배우 정우성(51)이 혼외자 존재를 인정하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두고 다양한 논쟁이 일고 있다. 정우성이 밝힌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을 두고 양육비 지원만 뜻하는 건지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혼인 외 출생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양육 책임자인 부모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례가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만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우성은 지난달 29일 ‘제45회 청룡영화상’에 참석해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가 지난 24일 모델 문가비와의 사이에서 혼외자 존재를 인정한 지 닷새 만에 나온 입장이다. 소속사는 당시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 최선의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며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우성 측 입장에도 일각의 비판 여론은 계속되고 있다. 출산 약 8개월째인 지금까지 양육 방식이 합의되지 않은 점과 ‘경제적 지원’ 외에 아버지로서 어떤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인지 명시하지 않은 다소 모호한 입장문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혼인 외 출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례를 가족 형태 다양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논란 역시 ‘결혼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한 부족한 공감대 때문에 촉발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혼인 외 출생자는 지난해 1만9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가족 형태보다 아이의 행복한 성장 중요”
전문가들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공인인 정우성·문가비 사례를 계기로 늘어나는 혼외자 양육과 관련한 발전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예인 사생활 파헤치기나 막무가내식 비난에서 벗어나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당사자 간에 충분한 합의가 있었고 아이에게 안정적인 양육 환경만 제공될 수 있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양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아이를 위한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는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구조가 있는 것 같다. 비혼 출산 등 여러 가족 형태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이슈도 관음증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보인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도 지난달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한 ‘아빠 정우성, 엄마 문가비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저는 정우성씨가 좋은 선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정우성이 아이를 만나는 게 알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혼외자 부모로서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정우성 편을 드는 게 아니라고 부연하면서 “두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주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모 역할, 경제적 지원만 아냐…일관된 양육환경 형성해야”
다만 ‘경제적 지원’만 책임지는 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양 변호사도 “(정우성씨가) 양육비만 주면 되는 게 아니라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면접 교섭”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비교적 보편적인 ‘공동 양육(co-parenting)’ 개념을 잘 정립할 필요도 있다. 공동 양육은 결혼하지 않은 동반자 혹은 이혼한 부부가 공동으로 양육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공동 양육 환경에서는 아이가 양쪽 부모의 집을 오가며 지내거나, 한쪽 부모의 집에서 주로 생활하더라도 다른 부모 역시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부부로 함께하지 않더라도 부모 모두 양육 당사자로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혼외자뿐 아니라 이혼 가정 등 가족 형태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양육을 중심에 두고 바람직한 역할을 찾는 게 우선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 양육에서 중요한 건 가족의 형태 자체가 아니라 “아이의 건강하고 행복한 성장이 침해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서 “(양육 방식, 참여에 대한) 부모 당사자 간에 충분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같이 살아도 양육에 참여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많지 않나. 경제적 지원 혹은 거주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경제적인 지원은 기본적이고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양육 참여가 아동 발달에 긍정적이라는 연구가 많다”고 강조했다. 가족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부모의 역할을 잘 나누고 참여하는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부모 당사자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양육 환경이 일관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엄마랑 있을 때와 아빠랑 있을 때 아이에게 요구되는 규칙 등에 차이가 크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모끼리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