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모(31)씨는 지난달 19일 한 메신저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동네 이웃 19명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비로 총 15만9000원이 나왔고, 이씨가 먼저 결제를 한 뒤 나머지 참석자로부터 각각 8500원씩 송금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18일 식사비를 받은 이씨의 계좌가 정지됐고, 다음날엔 이씨 명의의 모든 은행 계좌까지 동결됐다.
이씨의 지인 양모(30)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22일 동네 주민 6명과 함께 식사를 한 양씨는 먼저 식사비를 계산한 뒤, 2만500원씩 받았다. 양씨의 계좌도 지난 18일 동결 사태를 겪었다.
이씨와 양씨가 은행에 문의하자,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 황모(28)씨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황씨는 중고거래 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은행은 수배 중인 황씨가 밥값 명목으로 이씨와 양씨에게 보낸 돈도 범행을 통해 얻은 자금의 일부로 보고, 두 사람의 계좌까지 일괄 정지시킨 것이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중고거래 사기를 통해 약 110만원을 편취한 황씨를 검거했고, 지난달 29일 검찰 송치했다.
이씨는 “황씨가 수배중인 점을 전혀 알지 못했고, 오픈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라고 해명했지만 은행 측에선 계좌 동결 해제를 심사하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모든 계좌가 정지돼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도 만날 수 없고, 공과금 등도 밀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양씨는 주거래 계좌가 동결되자 21쪽 분량의 이의신청보고서를 작성해 은행에 제출했다. 양씨는 “은행 측에 자동이체 납부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전했다.
이들의 계좌가 동결된 배경에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있다. 이 법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편취한 돈을 추적하기 쉽게 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은행은 범죄자금으로 의심되는 금전 거래를 발견하면 관련 계좌를 모두 동결할 수 있다. 다만 신속한 피해금 환급을 위해 도입된 특별법이 취지와 달리 이씨나 양씨처럼 범죄와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최근 해당 특별법으로 비슷한 피해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자신의 계좌는 특정 범행과 관련 없다고 소명하는 기간동안 쓸 수 있는 비상 계좌를 제공하는 등의 구제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