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제공하는 전기차 1대당 7500달러(약 1050만원)의 세액공제를 없앨 가능성이 커지자, ‘블루스테이트’(민주당 우세)인 캘리포니아주(州)가 나섰다. IRA 혜택 폐기 시 주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IRA 혜택 전면 폐지라는 최악의 결과를 우려하는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로서는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의 최근 행보는 전기차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세액공제 정책 폐기로 점점 기울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5일 IRA에 대해 “재정적자를 부르는 파멸 기계이며 왜곡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라고 비판했던 스콧 베센트를 재무장관에 내정했다. 베센트의 핵심 의제에는 오는 2028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줄이는 계획이 포함돼있어 IRA 보조금 역시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보급의 중요성을 트럼프 당선인에게 설득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받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요세프 샤피로 UC버클리대 교수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액공제 혜택 폐기 시 소비자 가격 부담이 커져 전기차 수요가 기존 대비 27%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IRA 폐기가 전기차·이차전지 업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이에 미국에서 전기차 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주인 캘리포니아가 나섰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연방 차원의 전기차 세액공제가 사라질 경우 주 차원에서 시행했던 친환경차 환급 제도를 재도입해 혜택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발표에 대해 이차전지 업계에서는 일부 지역에서나마 K-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는 조치라며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기준 캘리포니아주에 등록된 전기승용차(LDEV)는 126만대로 미국 전체 등록 대수의 35%에 달했다. 다만 다른 블루스테이트로도 자체 보조금 도입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주정부의 재정 규모를 고려하면 연방정부가 지급하던 보조금 규모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가 지급 요건을 새롭게 정할 가능성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섬 주지사 측은 판매 점유율 기준을 도입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테슬라 모델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연방정부가 비효율을 이유로 폐지한 보조금을 그대로 부활시키긴 어려울 것”이라며 “현지 조립·생산 비중 조건 등을 변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이차전지 업체가 직접 받고 있는 첨단제조세액공제(AMPC)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공화당 우세 주를 중심으로 이차전지 공장 투자가 집중된 상황에서, 전면 폐지 대신 보조금 수령 요건 강화 등을 통해 혜택 축소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 일각에서는 나온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