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 어린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월드휴먼브리지의 사역

입력 2024-11-26 14:18 수정 2024-11-26 14:53
게티이미지뱅크

세 살 한성(가명)이가 자꾸 넘어지기 시작했다. 노래도 잘하고 말도 잘하던 아이였는데,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었다. 뇌전증 진단을 받은 아이는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됐다. 뇌전증은 치료를 하더라도 발작과 인지 기능 장애가 반복되곤 한다. 여러 종류의 약을 함께 써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치료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 열 살이 된 한성이는 수술도 받았고, 자신에게 맞는 약도 찾았다. 에피디올렉스라는 희귀 의약품인데 비급여로만 처방이 가능하다. 한번 처방받을 때 800여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한성이의 가정은 모든 게 달라져야 했다. 아빠가 곁에서 종일 한성이를 돌봐야 하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지만 약값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특수치료와 언어치료 덕분에 상태가 호전됐는데 가정 형편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 ‘아이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엄마 아빠가 눈물짓는 이유다.

한성이는 최근 기적적으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단어를 말하고 대소변도 가리기 시작했다. 기저귀 역시 더는 차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잘 믿지 않는 기적적 호전인데, 치료비 문제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이 가정의 슬픔이다.

열 살 민지(가명)도 갑작스러운 급성림프모구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수술 항암치료 등으로 4000만원 넘는 의료비가 발생했다. 아빠는 가게 운영을 접고 배달 일에 뛰어들었다. 엄마는 백혈병과 자폐를 동시에 앓고 있는 민지를 돌보느라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이 가정은 최근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부부는 “민지가 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재활 언어 치료를 통해 소통 능력을 끌어올리고 일상생활 훈련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 사회에 나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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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호개발NGO 월드휴먼브리지(대표 김병삼)가 ‘희망 충전’이란 이름으로 돕고 있는 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 환자들의 사연이다. 희귀난치성 질환은 완치법이 따로 없고, 대부분 복합적 장애와 증상을 동반하며, 비급여 항목이 많아 약값 부담이 막대하다. 희귀난치성 질환에 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계속해서 개발되고 보완되고 있지만, 새로운 질환 역시 계속해서 발견된다.

아이들의 오랜 투병 생활과 고가의 의료비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을 불러온다. 특히 취약계층 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들의 가정에 대한 돌봄의 손길이 절실하다. 김진섭 월드휴먼브리지 사무총장은 “가정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의료비를 지원하는 한편 삶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도록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심리적 고통을 더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드휴먼브리지는 전국 지부와 기관을 통해 지원받을 가정을 선정한다. 희귀난치성 질환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비 약제비 재활치료비 등을 지원한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120여명의 대상자를 도왔다. 2019년부터 해를 거듭하며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어린이 환자도 있다. 의료비 지원을 통해 어린이 환자가 속한 가정에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병세가 호전돼 현재는 병을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만 하면 되는 상황으로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

한 어린이가 그린 병상 일기. 월드휴먼브리지 제공

베체트병으로 앞을 보지 못한 진이(가명)네 가정도 이렇게 지원받은 사례다. 어려서부터 입안이 자주 헐었던 진이는 단순히 몸이 약한 게 아니었다. 구강 등 몸의 여러 곳에 궤양이 생겼다가 회복하기도 하는 베체트병 합병증으로 인해 진이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아빠는 수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고, 오빠가 진이를 돌보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했다. 엄마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수입으로는 고가의 약 비용을 대기도 어렵고, 특히 엄마 일이 늦게 끝나면 진이 스스로 몸에 주사를 놓아야 해서 엄마 마음이 더 아프다. 월드휴먼브리지는 모금 활동을 통해 수백만원에 달하는 진이네 가정의 한 달 약제비를 지원한 바 있다.

잘 놀던 승우(가명)는 엄마가 깎아준 과일을 먹다가 목에 걸려 뇌 손상을 입고 반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을 잃은 지 수년째 목에 끼워져있는 의료용 튜브가 없으면 혼자 숨을 쉴 수 없다. 승우를 돌보는 엄마는 자꾸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월드휴먼브리지는 승우의 기도삽관 튜브 및 소모성 약품비 1년치를 지원했다. 이밖에 육종암을 앓고 있는 예서(가명), 신경섬유종과 싸우는 정우(가명) 등도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의료비 지원 사업비는 월드휴먼브리지의 자선 골프대회, 온라인 모금 등을 통해 모이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희귀난치성 질환과 매일 싸워야 하는 아이들과 취약계층 가정들을 위해 희망을 충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