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정부예산안을 처리할 때 지역구 민원성 사업을 끼워 넣는 이른바 ‘쪽지 예산’ 탓에 국고보조금 2500여억원이 부당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 근거가 없는 지방 문화, 체육시설 건립에 예산이 배정된 사례가 감사원 감사에서 무더기로 확인된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 동의 없이 예산 편성을 추진했다가 사업이 추진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은 기획재정부에 “예산 규정에 적합하게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26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최근 4년간 법적 근거가 없는 문화·체육시설 예산 배정 및 집행 사례는 20건으로 나타났다. 배정된 국고는 2520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은 부당 지급된 보조금 대부분 12월 20일 전후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자체나 지역 동호회 숙원사업을 이뤄준다는 명목으로 끼워 넣은 ‘쪽지 예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국고보조금 부당 지급 사례 20건 중 13개 사업은 지자체가 의원실을 통해 보조금 지원을 요구한 경우였다. 나머지 7개 사업은 의원실이 지역구 동호회 등의 민원 제기로 지자체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국고보조금을 편성한 것이었다.
충남 아산시 한들물빛 청소년 체육시설 조성사업이 의원실 독자적 국가보조금 편성의 대표 사례다. 아산시는 지난해 8월 지역 의원실로부터 총사업비 30억원 규모의 체육시설 조성사업 추진을 요청받았으나 불가하다는 입장을 회신했다. 대상 부지가 공공기관 유치 목적으로 지정돼 있고 재정 여력도 없어서다. 하지만 다음 해 해당 지역구에 문제의 체육시설 조성을 위한 예산이 편성됐다. 아산시는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사업부지와 자체 재원을 재검토했지만 현재는 사업 포기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해당 사업이 지방이양사업이라 국고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산이 편성된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방 분권 촉진을 위해 국고보조사업과 지방이양사업을 구분한 보조금법 시행령을 2005년 개정했다.
감사원은 “이런 사업 예산은 매년 연말 국회 예산안 처리 막바지에 편성돼 지방비 확보 가능성과 사업 타당성 등이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는 여야 합의를 위해 소수만 참여하는 비공개 소소위원회를 만들어 최종 예산 배정 작업을 진행한다. 이때 ‘쪽지 예산’이 포함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보조금법 시행령에 국비 지원이 가능한 사업과 불가능한 사업의 구분이 일부 불명확하게 규정돼 자의적으로 해석·운영될 여지가 있는 것이 주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지방이양사업의 세부 내용이 보조금법 시행령에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게 정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