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점점 굳어가는 근이영양증을 앓아 온종일 인공호흡기를 끼고 침대에서 생활하는 김병훈(30·서산이룸교회)씨에게 인터넷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유튜브를 통해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해외여행도 해보고, 미국 대선 이후를 예측한 콘텐츠를 보며 국제 정세도 가늠해본다. 그런 김씨가 최근 직접 만든 찬양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며 세상과 소통에 나섰다.
안구마우스를 활용해 직접 가사를 썼고, 작곡 작업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만든 ‘경이로운 아버지’란 제목의 곡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 아버지 주 우리 주님. 위대한 당신 사랑해요. 하늘의 별 빛나는 밤, 당신의 사랑 느껴요. 영원한 당신의 손길, 평안한 나의 마음, 주님의 사랑 노래해요. 세상이 듣게 되리라.”
또 다른 곡 ‘곁에 계시는 하나님’에서 김씨는 “혼자 서있다가도 친구 같은 하나님 아버지, 곁에 계시는 그분, 내 마음속에 항상 계셔. 힘들 때, 슬플 때면 곁에 계시는 그분. 아무도 모르는 마음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예수 사랑을 고백한다.
25일 충남 서산시 석림동의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이날도 침대 앞에 놓인 모니터를 보며 작사에 여념이 없었다. 안구마우스로 커서를 움직였고 오른손 검지로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렇게 한 글자씩 가사를 입력해 만든 곡이 앞선 곡들이다.
김씨는 “AI 작곡 프로그램 사이트에서는 하루에 5곡씩 무료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데 심심할 때마다 한 곡씩 만든 게 벌써 16곡 정도 됐다”며 인공호흡기 너머로 옅은 미소와 함께 나지막하게 말했다.
옆에 함께 있던 그의 모친 서승현(60) 서산이룸교회 권사는 “병훈이가 만든 ‘경이로운 아버지’ 찬양을 듣는데 아들이 저렇게 깊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가 싶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며 “어떨 땐 오히려 병훈이가 먼저 예배 안 드리시느냐고 다그칠 때도 있다”며 웃었다.
김씨는 네 살 때 지금의 병을 진단받았다. 어느 날 우연히 김씨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뛰는 모습을 보고 병원에 갔다가 발병 사실을 알게 됐다. 근위축증이라고도 불리는 근이영양증은 근육 조직이 약해지며 수축, 퇴화하는 증상을 보인다.
서 권사는 “특히 남편이 내색도 크게 못 하고 많이 힘들어했다”며 “하지만 기도하며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서 권사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신앙이 자라며 질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김씨의 태도 덕도 컸다. 김씨는 “초등학생 때 한 두어 번 ‘왜 날 이렇게 낳았냐’며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신앙으로 점차 나쁜 생각을 거둬낼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다 부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가족은 그의 버팀목이다. 두 살 터울 위인 형은 김씨에게 더할 나위 없는 ‘멘토’이다. 가족과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 덕에 김씨는 학창시절 휠체어를 타면서도 일반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모태 신앙인인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신앙심이 크게 성장했다. 그는 “그때 왠지 예수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최신 CCM 곡보다는 정통 찬송가가 좋다고 말하는 김씨는 ‘내게 강 같은 평화’처럼 좋아하는 찬송가를 늘 들으며 불안감을 이겨냈다. 지금보다 손 움직임이 더 자유로웠을 때는 그림을 그리거나 웹 소설을 쓰며 장애에 맞섰다.
그는 “우울감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안 좋은 건 빨리 잊는 게 좋더라”며 “신앙을 갖게 되며 하나님이 긍정적인 마음을 주신 것 같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현재 그는 하루 세끼를 유체로 구성된 음식인 유동식에 의지해야 하고,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더 불편해졌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노래 역시 주로 밝고 경쾌하다. 잔잔한 멜로디로 과도하게 심금을 울리려 하지 않는다. 장애를 본격적으로 마주했을 때도 좌절하며 비관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그다웠다.
서 권사 역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아들을 보며 이겨내고 있다. 서 권사는 “병훈이가 하나님을 만나 긍정적으로 살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며 “그만큼 하나님께서 병훈이를 사랑하고 지키고 계시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목사님들과 권사님들께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백종석 서산이룸교회 목사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오랫동안 집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병훈이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직접 가사를 쓰고 가사에 AI 목소리를 넣어 곡을 만들었다고 들었을 때 너무나도 놀라웠다”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병훈이를 생각하니 감사와 감동과 기쁨이 넘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서 권사님이 병훈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서 권사님과 병훈이가 기쁨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 같이 서 권사님과 병훈이의 앞날에도 하나님이 동행하실 것이다”고 격려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김씨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물었다.
“제게 하나님은 그저 편안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가려운 곳을 제대로 못 긁을 때 힘든 걸 빼고는 딱히 힘든 건 없습니다. 이야기를 구상하며 글을 쓸 때가 가장 재밌고 행복해요. 그래서 조만간 로맨스 소설도 한 번 써보려 합니다.” 김씨는 이렇게 말하며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산=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