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두 개와 잼 한 통, 그리고 립 제품 두 개. 유모(34)씨가 전날 주문한 물건들이다. 완충재가 감싼 파인애플은 아이스팩과 함께 박스 2개에 하나씩 들어있었다. 잼 하나만 달랑 들어 있는 박스는 잼 용기의 3~4배는 돼 보였다. 손가락만 한 화장품 2개에선 사은품까지 합쳐 총 5개의 거대한 비닐과 보호재가 나왔다.
그는 “택배 상자를 포함하면 대부분 포장을 세 번은 뜯어야 한다. 조그만 물건도 포장이 과해 나흘 정도만 지나면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다”라며 “택배를 뜯을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약 51억5000만건으로 추산되며 사상 처음 50억건을 돌파했다.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횟수가 100건을 넘어선 셈이다.
한 해 수십억 개의 택배와 과도한 포장재로 발생하는 폐기물은 엄청나다. 2021년 기준 택배 포장 폐기물은 200만t으로, 전체 생활폐기물의 약 8.8% 수준으로 나타났다. 통상 중량 기준으로는 30% 이상, 부피 기준으론 50%를 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회용 상자로 택배를 보낼 때 1회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835.1g에 달한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택배 포장 규제를 유예하며 퇴보한 정책만 고수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022년 4월 포장재 감축을 위해 ‘일회용 수송포장 방법 기준’을 발표했다. 택배 포장 시 빈 공간 50% 이하, 포장 횟수 1차 이내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위반 시 최대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제도는 2년의 기간을 두고 올해 4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지난 3월 해당 규제의 계도기간을 2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2026년 4월 말까지 택배 과대 포장 규제를 어겨도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게 된 것이다.
유통업계는 과대포장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실효성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정부가 130만 곳이 넘는 포장 규제 업체를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을뿐더러, 규제를 강행할 시 택배 물량 비중이 크지 않은 중소업체 등 불만을 가질 유통업체가 많다는 이유다.
환경부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예외를 마련했다. 연매출 500억원 이하 유통업체는 규제 미적용 대상에 포함했으며, 식품 등을 포장할 때 쓰는 보냉재는 제품 일부로 간주해 포장공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예외가 ‘꼼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냉재를 제품 일부로 간주한다면 식품 배송 시 제품에 꼭 맞는 상자를 쓰는 대신 상자 빈 곳을 보냉재로 채워서 규제에서 비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전 세계가 친환경을 추구하는 실정에 계속해서 환경 정책 실행을 회피해 온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소비자의 관심과 더불어 기업들의 노력과 정부 규제가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