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혐의로 의회에서 탄핵당한 뒤 재선에 성공한 일본 효고현 사이토 모토히코(47) 지사가 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지역 홍보업체 대표가 사이토 지사 당선에 기여한 성과를 자랑하며 공개한 온라인 선거 전략이 발단이다.
효고현 소재 홍보·PR컨설팅업체 ‘메르추’ 오리타 카에데(33·여) 대표는 지난 20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사이토 지사에 대한 세상의 시각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해시태그 ‘#사이토전지사힘내라’였다”며 해시태그에 ‘지사’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넣어 ‘사이토=지사’라는 시각적 인식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홍보 전반을 맡았다” “업무였다”며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말은 사이토 지사로부터 보수를 받고 대대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렀다.
일본 공직선거법은 후보자가 선거 과정에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대상을 사무원, 차량 운행원, 수화통역사 등으로 제한한다. 홍보업체를 비롯해 제3자에게 선거운동을 맡기면 안 된다는 얘기다. SNS 전략 기획이 대가를 수반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일본 매체 스포니치는 25일 설명했다.
오리타 대표는 사이토 지사를 위해 수행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략을 1단계 ‘씨 뿌리기’, 2단계 ‘육성’, 3단계 ‘수확’이라는 세 단계로 도식화해 설명했다. 해시태그를 활용한 홍보로 ‘씨’를 뿌려 지지층을 ‘육성’하고 표를 ‘수확’한다는 의미다.
효고현 일부 유권자는 “소중한 한 표를 ‘수확’이라니 왠지 조롱당한 기분”이라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니치는 “오리타 대표가 일부 표현을 삭제했지만 허위 자료를 실수로 공개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사이토 지사는 선거운동 당시 ‘조직이 없는 외로운 선거’라고 호소했지만 블로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충실한 지원을 받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현의회에서 의원 만장일치 불신임안 가결로 해임된 사이토 지사는 지난 17일 선거에 재출마해 45% 넘는 득표율로 당선돼 복귀했다. 앞서 그는 직장 내 괴롭힘과 불법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전방위 퇴진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버티다 직을 잃었다.
오리타 대표는 논란이 불거진 뒤 블로그 게시물에서 해당 도식과 문제의 표현을 삭제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게시물 마지막에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일이었기에 언젠가 영화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이라고 적었던 부분도 삭제했다.
오리타 대표는 효고현에서 지방창생전략위원, e스포츠검토위원회 위원, 플라잉카(공중이동수단) 회의 검토위원 등 여러 공적 직책을 맡고 있다.
선거법 위반 여부는 SNS 전략 기획을 누가 주도했는지로 갈릴 전망이다. 사이토 지사 측이 맡겼다면 불법이다. 오리타 대표가 스스로 한 것이라면 위반 소지를 피해갈 수 있다.
사이토 지사의 변호인은 “SNS 전략 기획이나 입안은 의뢰하지 않았다”며 법이 허용하는 포스터 제작 등에만 적절한 금전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공직선거법 저촉 행위는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선거 플래너인 도가와 다이사츠 행정서사는 스포니치에 “선거전에서 SNS의 역할이 커지고 있어서 SNS에 능숙한 사람을 진영에 포함시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선거 관련 법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이번 PR업체 대표도 공직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모르고 자료를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증으로는 완전히 유죄”라며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도가와 행정서사는 오리타 대표의 SNS 전략 공개 이유에 대해 “일종의 인정 욕구가 방아쇠가 됐을 것”이라며 “다음 일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