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강제동원’ 언급 없었다

입력 2024-11-24 18:35
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전(終戰)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이 일었던 일본 정부 차관급 인사가 24일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서 일하다 희생된 이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언급이나 사과는 없었다. 그는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만 말한 뒤 추도식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행사장을 떠났다.

이날 오후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린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 한국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추도식’이 진행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참석한 그는 ‘내빈 인사말’이라고 명명된 추도사를 통해 사도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위로의 뜻을 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사도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우리나라(일본)가 전쟁 중에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앞 세대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추도식에 함께 한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는 “광산에서 채굴과 발전에 공헌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 모두 ‘경의’와 ‘감사’의 뜻을 전했을 뿐, ‘강제’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이날 추도식은 오후 1시부터 약 40분간 묵념, 인사말,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당초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측이 불참하면서 40석 정도가 빈 상태로 진행됐다. 행사장도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다. 행사장 앞에 ‘사도광산 추도식장’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됐을 뿐, 인근에서 관련 포스터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 등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식이 마무리되자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뒷문을 통해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미리 대기 돼 있던 차에 올라 떠나는 그를 기자들이 뒤쫓자 일본 측 행사 진행자들이 팔로 밀쳐내며 저지하기도 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사도광산 추도식 이후 뒷문을 통해 급히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추도식이 한국의 보이콧 속에 ‘반쪽 행사’로 치러진 데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행보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과 산케이에 따르면 그는 2022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를 두고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한국은 전날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측 추도식에는 박철희 주일대사와 한국 유가족 9명 등이 참석한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역사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에 따르면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수는 1500명을 넘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