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추가경정예산 편성 검토설에 대해 빠르게 선을 그었다. 다만 윤석열정부가 임기 후반기를 맞아 양극화 해소와 민생 활력 제고를 강조한 만큼 향후 재정 기조는 일정 부분 적극 재정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4일 “현재 기재부는 내년도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고, 그 필요성도 예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난 22일 일부 언론은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정부가 내년 초 추경 편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기재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현재 내년도 예산안은 국회 심사 중”이라고 반박하면서 신속하게 진화에 나섰다.
관가에서도 내년 초 추경 편성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초 추경 추진은 대규모 재해나 전쟁 같은 비상시국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연초 추경을 편성한 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과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2022년이 전부다. 적자 재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국채 발행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을 더한다.
다만 향후 경제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투입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 자체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56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임기 후반기에는 양극화 타개로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에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민생과 경제 활력을 반드시 되살려 새로운 중산층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도입해서라도 향후 경제 성장의 실마리를 ‘내수 진작’에서 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건전 재정을 앞세운 윤석열정부에서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지난해와 올해의 정부부문 성장기여도는 나란히 0.3% 포인트에 그쳐 2011년(0.1% 포인트) 이래 가장 낮았다. 내년 기여도 역시 0.5% 포인트로 2001~2022년 평균치(0.8% 포인트)를 하회할 전망이다.
문제는 내수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수출까지 한계에 봉착하면서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나란히 2.0%로 내려 잡았다.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수출이 기저효과와 주요국의 성장률 하락,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로 작용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투입을 통한 내수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현재의 감세 기조를 유지한 채 재정 투입을 늘릴 경우 건전 재정 달성은 더 요원해진다는 점이 딜레마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국내총생산(GDP)의 3.03%에 이르러 또 재정준칙상 적자 기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굳이 추경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요긴한 부문에는 내년도 예산 편성부터 ‘확장 재정’ 기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미 윤곽이 잡힌 사업의 경우라면 내년도 예산부터 (확장 재정 기조를) 반영하고, 향후 재원 조달에 차질이 없도록 세수 확충을 위한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