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중학교 3학년 2반 담임 선생님

입력 2024-11-24 18:18 수정 2024-12-02 10:00

To. 갑순에게.
보컬 갑순아. 노래 정말 잘하더라. 노래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재주가 많아. 갑순아, 본인이 학업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기말고사는 어땠니? 열심히 했니? 최선을 다하면 늘 좋은 결과 있을 거야. 혹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돼. 갑순이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어. 언제나 행복하길 응원할게.
-담임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2반 담임 선생님이 학생 갑순에게 보낸 엽서 내용이다. 엽서 앞면에는 빨간 사과 그림이 그려져 있고, ‘Happy Apple Da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행복한 사과의 날’은 한 달에 한 번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신이나 친구 또는 선생님에게 사과나 칭찬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담임 선생님은 이날 갑순이를 포함한 반의 22명 학생 모두에게 한 달 동안 관찰하거나 상담한 내용을 토대로 엽서를 써서 나눠 줬다.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아침 7시에 도착해서 추운 날에는 히터를 틀고,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켠다. 학생들이 등교할 때쯤 되도록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만들려는 배려다. 그러고 나서 교실에서 먼저 기다리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한다. 학생 중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도 있다. 교실에 들어서던 그 학생이 담임 선생님의 품에 뛰어들다시피 안긴다.

오늘은 자리를 바꾸는 날이다. 담임 선생님은 자리 바꾸는 날짜를 독단적으로 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담임 선생님이 먼저 ‘언제 자리를 바꿀까’라고 물으면 학생들이 이런저런 날짜를 말하고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서 날짜와 자리를 정한다. 오늘 갑순이는 장애 학생과 짝꿍이 되었다. 그 친구가 짝꿍으로 갑순이를 적었고, 갑순이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교실에 들른다. 학생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기도 한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담임 선생님과 반 학생 모두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여기서도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은 신나게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데,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 자리에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장애 학생을 세심히 살핀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함께 농구를 하거나 산책을 한다. 이렇게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마음으로 스며드니, 왕따나 학교폭력이 발붙일 자리가 생길 리 만무하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담임 선생님은 ‘오늘도 행복하게 공부했지? 내일도 행복한 얼굴로 만나자’라며 문 앞에서 학생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배웅한다. 이때가 되면 장애 학생은 집에 가기 싫다는 듯이 담임 선생님을 꼭 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토록 세심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면 정년퇴임을 앞둔 여자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담임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남자 선생님이다. 여전히 학교에는 이런 선생님이 있다. 스승이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