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국립기상과학원의 구름물리실험챔버에선 인공강우 실험이 한창이었다. 인공강우란 구름 속에 구름씨앗이라고 불리는 강수 성장 유도물질(구름응결핵)을 뿌려 비 또는 눈을 인위적으로 내리도록 하는 기술이다. 0.2㎛ 크기의 구름씨앗을 1만배에 달하는 2㎜ 크기의 빗방울로 키워내는 것이다.
실험은 인공강우용 구름씨앗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요오드화은(Agl) 연소탄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화학물질은 에어로졸챔버에서 구름응결핵으로 만들어져, 관을 타고 구름챔버로 흘러 들어갔다. 21㎥, 3층 규모의 거대한 구름챔버는 실제 구름 환경과 비슷한 기온 0도, 기압 850hPa로 맞춰져 있었다.
5분가량 지나자 챔버에선 하나둘 구름 입자들이 생성됐고, 삽시간에 별 모양의 빙정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이 빙정들이 공기 속 수증기와 엉겨 구름을 형성하고, 구름의 수증기가 충분하게 되면 빗방울로 내리게 되는 것이다.
김승범 기상응용연구부장은 “유사한 구조의 구름챔버를 가진 나라 중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크기의 빙정(1000㎛)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소탄 24개를 투하할 수 있는 기상항공기가 실제로 비행해 구름씨앗을 뿌리게 되면 구름이 충분할 경우 20분 내로 비가 내릴 수 있다.
지난달 25일 기후변화감시예측법이 시행되면서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국립기상과학원은 1978년 ‘기상연구소’로 설립돼 2015년부터 국립기상과학원으로 개칭했다. 기상 및 기후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정부기관으로서 기상과학원은 재해 및 위험기상에 대한 사전 대응능력을 높이고 예보정확도를 향상시키는 예보연구, 첨단 관측기술을 활용하고 개발하는 관측연구, 인공강우 등의 기상조절 기술을 개발하는 기상응용연구 등을 수행한다. 기상청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기관인 셈이다.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진행 중인 인공강우 기술 연구는 위험기상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 중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이다. 대표적으로 산불 예방에 활용될 수 있다. 차주완 기상연구관에 따르면, 2000㎡ 면적의 수도권에 6㎜정도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선 1억t의 물이 필요하다. 한 번에 3t 분량의 물을 뿌릴 수 있는 소방헬기는 한 번에 대략 25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억t의 물을 뿌리기 위해선 약 80조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공강우 한 번으로 1억t의 물을 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공강우는 산불 예방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조절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어 세계적으로도 관심받고 있는 기술이다. 한국의 인공강우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내 기술로만 제작된 구름실험챔버는 아시아에서 2번째 규모이면서 세계에서 9번째로 만들어졌다. 각종 실험 및 계측장비를 포함해 연면적 893㎡의 구름실험챔버 건설엔 총 103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챔버 정도 규모에서 자유자재로 기압과 기온을 빠르게 조절하면서도 구름입자를 관측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차 연구관은 “사막기후까지 다양한 기상환경을 실질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인공강우 기술 수준에 세계 각국에서 업무 협약을 요청해오고 있다”며 “최근 태국과도 업무협약(MOU)을 맺자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기상청은 1시간에 1㎢ 기준 4.6㎜(460만톤), 연 강수량의 1.7%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인공강우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 기상청은 2028년까지 연 강수량의 7.5%를 내리게 하는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상청은 단순히 기상을 예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제주=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