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3일(현지시간) 농무부 장관에 브룩 롤린스 미국우선주의연구소(AFPI) 대표를 지명하면서 2기 내각 인선을 마무리했다. 15개 부처 장관 지명자의 키워드는 ‘충성파’로 요약된다. 외교·안보 라인은 대(對)중국 강경파, 경제부처는 보편 관세론자 등을 중용했다. 보수 언론사 폭스뉴스에서 활동해온 인사들을 여럿 발탁한 것도 특징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성명에서 “텍사스 출신의 브룩 롤린스를 지명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차기 농무부 장관으로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중추인 농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농부들을 지원하고 미국 식량 자급을 옹호하며, 농업에 의지하는 미국 소규모 마을을 복원하려는 브룩의 헌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롤린스는 친(親)트럼프 싱크탱크인 AFPI를 만들어 트럼프 정책을 홍보하고, 2기 행정부 정책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트럼프는 오랜 고심 끝에 재무장관으로 스콧 베센트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를 지난 22일 지명했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스콧은 세계 최고의 국제 투자자이자 지정학 및 경제 전략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롤린스를 끝으로 2기 행정부 15개 부처 장관 인선을 끝냈다. 트럼프는 지난 6일 당선이 확정된 이후 불과 17일 만에 내각 구성을 완료하는 속도전을 펼쳤다. 내각 뿐 아니라 백악관 참모와 다른 장관급 인사들 인선도 대부분 마무리지었다. 재임 대통령이 된 만큼 주요 정책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내각 인선의 핵심 코드는 검증된 ‘충성심’이다. 해당 분야의 경력이 부족해도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옹호해온 인사들이 대거 발탁됐다. 국방부 장관에 발탁된 피트 헤그세스 폭스뉴스 진행자가 대표적이다. 예비역 소령 출신인 그는 조직 관리 경험도 적고 극단주의적인 성향이지만 트럼프를 공개 찬양해온 인사다.
트럼프는 법무장관에 충성파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을 지명했지만 그가 성추문으로 낙마하자 또 다른 충성파인 팸 본디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본디 지명자는 트럼프가 재임 시절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변호팀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교육 경력이 거의 없는 린다 맥마흔 교육장관 지명자는 트럼프와의 오랜 인연이 있고, 백신 음모론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 장관 지명자는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무소속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충성심을 입증했다.
대외 정책의 키워드는 ‘중국 견제’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에는 대중 강경파로 널리 알려진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지명됐다. 내각 소속은 아니지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도 중국과의 경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매파 인사다.
경제정책에서는 트럼프가 내내 강조해온 관세 확대론자들이 기용됐다. 상무장관에 지명된 하워트 러트닉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재무장관에 지명된 스콧 베센트 모두 적극적인 관세주의자다.
트럼프는 모든 외국산 제품에는 10~20%의 보편 관세,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두 지명자는 관세를 외국과의 협상을 위한 일시적 도구로 쓰느냐, 아니면 세수 창출을 위한 지속적 수단으로 쓸 것이냐를 두고 균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 인하와 각종 규제 완화를 강조해온 것도 두 장관 지명자의 공통점이다.
폭스뉴스 관련 인사들의 약진도 이어지고 있다. 본디 법무장관 지명자는 폭스뉴스 패널로 활동했고,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도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이다. 하원의원 출신인 숀 더피 교통장관 지명자도 폭스뉴스 계열인 폭스 비즈니스 진행자를 맡아왔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저택이 있는 플로리다 출신들이 발탁된 점도 눈에 띈다. 내각에서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본디 법무장관 지명자가 플로리다 출신이다.
15개 부처 장관 중 흑인은 스콧 터너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지명자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다. 여성 장관 지명자는 로리 차베스 드레머 노동장관,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 등 5명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2기 인선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며 “ 광범위한 정책을 감독하는 ‘차르(Czar)’ 직책을 신설하고, 논란이 많고 관련 정책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을 발탁하는 등 비정통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5개 부처 장관은 모두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한다. 맷 게이츠 전 법무장관 지명자가 자진사퇴했지만, 추가로 낙마하는 장관 지명자가 나올 수 있다. 비슷한 성 추문에 휘말린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백신 불신론을 퍼뜨린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 지명자 등이 상원 인준에서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