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식당 ‘되는 데만 몰리네’… 자영업자 한숨

입력 2024-11-24 10:12 수정 2024-11-24 15:39
픽사베이

직장인 최모(32)씨는 연말을 앞두고 캐치테이블 애플리케이션에서 식당을 예약하려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리미티드 위크’ 예약 오픈 알림을 받고 미리 앱에 접속해 대기했지만 막상 예약이 시작되니 휴대전화 화면이 멈췄고 1분 뒤에는 12월 예약 대부분이 마감됐다. 최씨는 “얼마나 빨리 클릭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며 “연말에 분위기 한 번 내기 너무 힘들어졌다”고 허탈해 했다.

캐치테이블은 리미티드 위크 1일 차 동시 접속자 수가 지난해 대비 1070% 증가했다고 24일 밝혔다. 6일 차까지 진행된 리미티드 위크의 누적 접속자 수는 전년 대비 약 394% 늘어나 흥행력을 입증했다. 리미티드 위크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전국 1000여개 인기 레스토랑을 먼저 예약할 수 있는 프로모션으로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됐다.

본격적인 연말 시즌에 들어가기도 전에 ‘예약 전쟁’이 벌어졌다. 통상 연말 시즌 캐치테이블 트래픽은 평상시보다 2배가량 늘어나는데, 이번 프로모션에 인기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대거 포함되면서 페이지가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해당 식당들의 12월 예약은 대부분 마감된 상황이다.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흑백요리사 방영 후 일주일 만에 파인다이닝 식당 평균 예약 증가율은 약 150%를 기록했고, 한 식당의 예약 증가율은 5000%에 육박했다.

미식 유행은 흑백요리사 출연 식당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선정 레스토랑이나 유명 호텔 뷔페 등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기존에 어느 정도 유명세를 날렸던 맛집들의 예약 증가율도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식 열풍에 앱이나 온라인뿐만 아니라 전화 예약까지 어려워지고 있다. 현장 웨이팅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인기 식당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장시간 대기하더라도 입장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난처해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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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른바 ‘업자’들이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캐치테이블 뿐만 아니라 예약 전쟁이 모든 플랫폼에서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암표 거래 등을 위한 목적으로 미식 열풍을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흑백요리사 우승자 권성준 셰프의 캐치테이블 식당 예약권이 50만~70만원선에 거래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권 셰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암표 거래가 걸리면 바로 앱 자체 영구 블랙이다. 예약금도 환불이 안 된다. 예약권 거래 관련 제보를 주시면 바로 조치하겠다. 암표 거래 현장을 잡으신 분께 예약권을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캐치테이블은 2024년 11월 기준 1만개가 넘는 제휴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연말 식당 예약 경쟁은 한창이지만 미식 열풍을 바라보는 외식업계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못하다. 흑백요리사가 유행하면서 일시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린 식당들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결국 파인다이닝과 유명 레스토랑에 쏠리면서 업계 전체가 훈풍을 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60대 국밥집 사장은 “경기가 좋아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밖에서 밥을 잘 안 사먹는다”며 “방송 프로그램이 대박났다고 해서 일반 자영업자 사정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전망치 83.12보다 아래인 76.04를 기록했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전망이 어둡다는 뜻이다. aT는 “외식업의 경우 식재료 물가 불안정으로 인한 비용 상승과 높은 체감물가로 인한 소비심리 회복 지연이 과제로 남아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연말 회식 및 모임이 감소함에 따라 4분기 연말 특수를 기대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