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3년 시작된 ‘삼진벽난로’가 창업 30년만인 2003년 비로소 기업으로서 모습을 갖춘 데 이어 20여년 넘게 가파른 상승세로 ‘역사와 전통의 대한민국 대표 벽난로’로 우뚝서며, 3대로의 ‘가업잇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은행원 4년차인 1993년 겨울쯤 1대인 장인의 부름에 무조건 사표를 내던지고 나선 2대 정현진(사진) 대표가 그 중심에 있다.
단풍이 울긋불긋 만추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로망의 벽난로가 그리워지는 21일 기자는 정 대표와 경기도 광주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작을 빨갛게 태우며 예술로 승화시키는 자태와 따뜻함을 선사하는 삼진벽난로와 함께 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혀 관련이 없는 벽난로 업계에 뛰어든 배경은.
“집사람이 (아들이 없는 집안)장녀다. 장인이 사업을 하다 어려움에 처하시자 사업 정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1993년 겨울 무렵 하루는 저를 불렀다. 장인께선 ‘사위도 자식인데 자네가 나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은행원 월급으로 그럴 수 있겠느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회사가 어렵지만 자네가 와서 회사를 잘 경영해 나도 먹여 살렸으면 한다’고 제안을 하셨다. 당시 장인 어른은 경영학을 전공했으면 사업 경영을 잘하는 것으로 판단하신 것으로 보여 고민 끝에 4년 여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벽난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2003년이 삼진벽난로의 터닝포인트(전환점)으로 보이는데.
“막상 과장 명함으로 회사에 출근해 한 달이 지났는데 월급이 안 나오는 거다. 집사람은 아버지 회사라 뭐라고 말을 못하지만 난감하더라. 막노동부터 벽난로를 놓는 일까지 회사 업무를 닥치는대로 했다. 1998년 12월쯤으로 기억되는데 우연히 여행사를 통한 유럽 벽난로 박람회를 알게됐고, ‘사채 등 빚더미 속에 무슨 해외 출장이냐’는 장인 어른의 반대와 핀잔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박람회를 방문해 선진 벽난로를 알고 수입해 판매는 물론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변화를 보이더니 2003년에 급격한 매출 성장과 함께 삼진벽난로가 본궤도에 오른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정말 10여 년 동안 속으로 많이 울었다.”
-삼진벽난로 성장을 말해달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적을 때는 15%p에서 많을 때는 30%p까지 매년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특히 성장이 가장 높았을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때였다. 도심에 있으면 불안하니까 주말이면 별장이나 전원주택으로 가게 되는데 난방도구로 벽난로를 설치해서 그렇다. 여기에는 보일러로는 아무리 돌려도 추우니까 벽난로를 많이 설치해, 그 덕분에 초호황을 누렸다. 코로나로 많은 고통을 받으신 자영업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 업종은 코로나 수혜업종이었다. 현재 한해 설치하는 벽난로만 1000대가 넘는다.”
-성장과 관련 삼진벽난로만의 노하우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안 좋지 않느냐. 제 생각은 ‘과연 우리가 하는 이 사업이 사회에 필요한 산업인가’라는 시대 요구(needs)에 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장작을 한 번 넣으면 굉장히 오래 태우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다른 업계 회사도 부정할 수 없다. 밀폐력이 대단해 장작 타는 속도가 정확하게 조절돼 나무를 한 번 넣으면 최장 14시간까지 탄다. 이로 인해 벽난로를 주 난방으로 사용하는 가정에서는 보일러를 가동할 때보다 더 따뜻하다면서도 장작 비용이 월 10만원이 넘지 않는다. 삼진벽난로는 자동차로 치면 연비가 좋은 벽난로로, 시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기술력으로 성장을 지속한다는 의미다.”
-경영 철학은.
“우리 업계는 모든 업체들이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키워드는 한국에 맞는 벽난로 기술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벽난로를 주난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그것이 삼진벽난로를 영원한 기업으로 이끄는 방안이라는 확신이다.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 물고기는 한 구덩이로 모인다. 이처럼 고객들은 시장이 안 좋으면 역시 많이 고민하셔서 좋은 제품, 실패를 안 할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실 것이라 분석이다. 그래서 고객에게 필요한 기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을 삼진벽난로는 선보여 반드시 성장하겠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3대 가업잇기가 한창인 것으로 아는데.
“삼진벽난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로, 나름대로 기반을 갖춰놨다. 내가 처음 왔을땐(1993년) 거의 무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재고자산만 해도 창업 당시보다 1000배 늘어났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2014년 초 ‘(아들에게)이제 회사 기반을 다져놨으니 네가 와서 해외 유학을 한 지식을 바탕으로 (삼진벽난로)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켰으면 한다’며 가업잇기 제안을 했다. 그러자 아들은 쾌히 ‘해보겠다’고 했고, 아들은 바닥부터 시작해 시공, 생산 등을 두루 경험하며 훌륭히 해내고 10년만인 올해 자질면에서도 나를 훨씬 뛰어넘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우뚝 섰다. 저는 아들이 삼진벽난로가 태어나고 최고의 경영인을 만났다고 확신한다. 경영에 대한 어떤 안건을 던지면 (아들)저를 훨씬 뛰어넘어 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 저는 언제든지 이 자리를 비워도 아주 잘해나갈 것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 자랑이 아니길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
광주=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