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도사 ‘베릴’ 조건희가 디플러스 기아로 돌아왔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승격과 LoL 월드 챔피언십 우승, 이듬해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과 월즈 준우승의 아쉬움까지 모든 영광과 희노애락을 함께했던 그 팀으로. 21일 서울 영등포구의 디플 기아 사옥에서 조건희를 만나 친정팀으로 돌아온 소감을 들어봤다.
-올해 KT에서 서포터로 활동했다. 지난 1년간의 소회는.
“스프링 시즌도, 서머 시즌도, 월즈 선발전도 이길 수 있는 경기들을 다 이겨야 했다. 그랬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올해 KT 팀원들과 같이 월즈에 가지 못해서 정말 아쉽다. 월즈에 갔다면 잘했을 거 같은데….”
-약팀에 덜미를 잡히고 강팀의 발목을 잡는 롤러코스터 팀이었다.
“약팀들에 덜미를 잡힌 건 초반 설계 능력이 부족해서였다. 연습 단계부터 설계가 잘 안 됐다. 혁규 형이 설계 연구를 많이 도와줬음에도. 강팀들을 잡은 건…올해 젠지가 거의 안 지지 않았나. 젠지의 약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성과다. 이것 역시도 혁규 형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한화생명전은 상대가 쉬바나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지 않았을까?(웃음)”
-지난 19일 자유 계약(FA) 신분이 됐다. 여러 오퍼를 받았을 텐데 디플 기아로 돌아온 이유는.
“2024시즌 일정이 마무리된 뒤 에이전시와 내년 계획을 상의했다. 선수가 아닌 길도 선택지로 뒀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 좋겠더라. 여러 오퍼를 놓고 고민했다. 조건들을 전부 고려해본 뒤 디플 기아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다른 팀에서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줬다. 올해 룸메이트였던 ‘데프트’ (김)혁규 형이나 양대인 감독님께도 조언을 구했다. 양 감독님께선 ‘스포츠에서 남는 건 커리어와 돈’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더라.(웃음)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얘기를 나눈 뒤 디플 기아행을 결정했다. 좋은 성적을 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차기 행선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둔 가치는.
“2021년 DRX로 이적할 때도 그랬지만 나는 월즈에 진출할 수 있는 팀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쇼메이커’ 허수와는 예전에도 함께해봐서 그가 잘하는 선수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상대 팀으로도 만나 보니 챔피언 폭이 넓어서 대처가 까다롭더라. ‘에이밍’ 김하람은 2019년부터 맞상대해봤는데 해가 지날수록 실력이 는다고 느꼈다. 올해도 디플 기아의 에이스였다. 매년 기량이 발전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김하람의 그런 점이 기대됐다.”
-‘시우’ 전시우·‘루시드’ 최용혁으로부터도 가능성을 봤나.
“최용혁은 올해 상대해보니 신인임에도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느꼈다. 전시우는 올해 LCK CL에서 데뷔한 선수인데도 퍼포먼스가 좋았다고 하더라. 기대가 된다. ‘칸’ (김)동하 형이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동하 형과 2021년에 함께 해보니까 사적으로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일할 땐 또 스마트하다. 전시우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디플 기아의 약점으로 운영이 꼽힌다. 조 선수가 이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까.
“운영은 선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5명이 함께하는 것이다. 5명이 각자 미니맵을 5초가량 봤을 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기 있어도 되는지 아닌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지금 움직여야 하는지 나중에 움직여야 하는지를 바로바로 계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
-2025년의 디플 기아가 어떤 팀이 됐으면 하는지.
“다재다능한 팀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여러 조합을 소화할 수 있는 팀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 스노우볼을 굴리는 조합, 초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후반을 바라보는 조합, 양쪽의 밸런스를 적당히 맞추는 조합을 다 다룰 수 있는 팀이 좋다. 프로라면 메타는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유충의 등장으로 게임 양상에 많은 변화가 생긴 한 해였다.
“유충이 처음 나왔을 땐 메리트가 크지 않았기에 선수들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한 번 버프된 뒤로 중요도가 올라갔다. MSI부터 라인 스와프가 시작됐다. 라인 스와프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경험치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 차례 너프를 당한 포탑 골드보다 초반 경험치의 중요도가 높다. 경험치와 관련된 무언가를 라이엇 게임즈가 건들지 않는 이상 라인 스와프는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초반 맞라인전이 불편한 구도’가 사라진 점이 결정적이다. KT에선 혁규 형이 예전에 라인 스와프 메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려줬다.”
-라인 스와프 전략이 내년에도 유행할까.
“나도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봤는데 결국 라인 스와프를 건드리는 게 어렵겠더라. 탑라인 미니언을 2명이서 먹었을 때 초반 3분간은 획득 경험치를 낮추면 어떨까 싶었지만 그러면 또 선수들이 3분 이후에 스와프를 걸지 않을까. 아니면 유충을 한 번에 3개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 5분에 1개, 이후 2분마다 1개씩 나오게 한다면 또 어떨까. 프리시즌에 그 정도의 파격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라인 스와프는 내년에도 나올 것으로 본다.”
-올해 월즈를 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플라이퀘스트, 웨이보 게이밍을 보면서 역시 당연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스코어나 승패 예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 플라이퀘스트 경기를 보던 혁규 형이 ‘원딜(‘마쑤’ 파하드 압둘말렉) 잘한다’고 하더라. 나도 경기를 보니까 플라이퀘스트의 팀적인 완성도가 높고 그 중에서도 원거리 딜러가 돋보인단 인상을 받았다.”
-월즈 2회 우승자다. 본인만의 월즈 노하우가 있다면.
“월즈에서는 확실히 리그에서의 100% 기량이 나오지 않는다. 4강 이상의 무대로 올라가면 라인 맞대결에서 압승이 안 나오고 (챔피언) 상성대로 간다. 큰 경기로 갈수록 자신감 있게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유리해진다. 나는 이 게임을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만 매몰되면 절대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최선일지에만 집중한다. 무척 강한 상대라도 내가 자신감 있게 하면 내가 두는 수에 당할 수 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