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에 입양갔니?” 유기견이 편지를 보내왔다 [개st하우스]

입력 2024-11-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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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5일 동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에 연우씨와 하루가 보낸 편지. 하루의 구조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잘 지내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최수진 기자

“하루가 구조된 날을 하루의 생일로 정했어요. 넓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뜻깊은 날이니까요. 올해 생일에 하루를 보살펴준 동물단체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어요. 물론 제가 쓴 게 아니라 하루가 직접 쓴 편지예요. 하루가 굉장히 예의 있고 똑똑해서 편지도 잘 씁니다.

-하루 보호자 김연우(37)씨

지난 여름, 한 장의 편지가 SNS를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편지 작성자는 김하루, 연한 갈색빛 털이 매력적인 푸들입니다.

편지 내용은 이랬습니다. “안녕하십니까. 2017년 8월 5일에 태어난 김하루, 당차게 인사드립니다(…)축하해주신 마음을 보답하고자 큰 마음을 가득 담아 약소하지만 정성을 준비하였습니다. 늘 가내 평안하시고 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저 역시 밥 잘 먹고 산책 잘 하고 말도 잘 듣고 행복하고 건강한 강아지가 되겠습니다.”

연우씨가 취재진에게 하루의 편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편지 주인공인 하루는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최민석 기자

세상 귀여운 외모와 서당에서 3년은 잔뼈가 굵은 듯한 문체. 이 생소한 조합은 3만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으며 SNS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청학동으로 입양 간 거냐” “입양 간 지 3년이라 풍월을 읊나 보다”라는 농담을 나누며 열광했죠.

하지만 온갖 사랑 다 받고 자란 듯 보이는 하루에게는 쓰리고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하루는 충남 보령의 불법 번식장에서 살던 번식견입니다. 지난해 8월 5일 극적으로 구조됐는데 입양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인 지난 8월 5일, 하루의 근황을 알리는 기적 같은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보호자 김연우씨와의 만남 덕에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하루. 편지 한장으로 SNS 스타가 된 하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들이 많아 개st하우스팀이 지난달 17일 하루와 연우씨가 사는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외면받던 번식장 출신 성견, 입양의 문턱을 넘다

산책을 마친 하루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하루는 매일 1시간에서 많게는 3시간의 산책을 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지난해 7월, 보령에서는 강아지 400여 마리가 갇혀있던 대규모 불법 번식장이 적발됐습니다. 하루는 그곳의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던 모견이었습니다. 활동가들 노력 덕에 구조는 됐지만 상처는 오래갔습니다. 동물단체 ‘카라’의 입양센터로 옮긴 뒤에도 하루는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했고, 낯선 환경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입양 가능성도 희박했습니다. 당시 하루는 추정 나이 6살의 성견이었고, 소심한 성격 탓에 눈에 잘 띄지 않았거든요. 유기동물은 어릴수록 입양이 잘 되는 게 현실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입양 실패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성견이거나 연령이 높아서’(38.9%)입니다.

지난 10월 27일 서울시 강남구 자택에서 연우씨와 하루를 만났다. 최민석 기자

하루는 운이 좋았습니다. 행운 같은 인연이 찾아왔거든요. 바로 하루의 견주가 된 연우씨죠. 연우씨는 나이가 많은 암컷 하루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갔다고 해요. 기계처럼 출산을 반복했을 모견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양을 못 가는 딱한 하루가 눈에 밟혔습니다.

연우씨는 “번식장 구조견이나 장애견은 입양 기회가 훨씬 적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그런 강아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하루가 변화시킨 일상

하루는 먹고 있던 간식을 뺏어가도 소리 한 번 내지 않을 정도로 성격이 순하다. 최민석 기자

하루가 연우씨와 함께 지낸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집에 온 뒤로도 한동안 연우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과거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하루는 ‘연우바라기’더군요. 연우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애교는 또 얼마나 많은지. 산책을 가자고 조를 때는 연우씨가 기어이 신발을 신을 때까지 온갖 필살기가 등장합니다.

연우씨는 “동물단체 활동가가 연우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해서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정말 밥만 주고 서로 신경 쓰지 않았다”며 “그런데 어느 날 하루가 갑자기 침대로 올라오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누웠다. 아직도 그때 느낀 감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월 18일 하루가 연우씨 집으로 입양왔다. 이날 하루는 동물단체에서 '베베'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하루하루 행복하라'는 뜻의 새이름을 얻게 됐다. 낯선 풍경에 겁을 먹은 하루의 모습. 김연우씨 제공

하루가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한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이동장 밖으로 나오는 것도 주저했고, 밥 먹을 때도 눈치를 봤던 하루. 하지만 이제는 산책하러 나갈 때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우씨를 이끌고,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하는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강아지가 됐습니다.

자기주장을 하지 않던 하루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강아지가 됐다. 여름 캠핑을 위해 연우씨가 장만한 강아지용 선글라스가 싫어 도망가고 있는 하루의 모습. 최민석 기자

연우씨는 그런 하루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더군요. 연우씨는 “제가 이럴 줄 몰랐는데 친구들이 아기 자랑하듯이 저도 자꾸 하루 자랑을 하게 된다”며 “직장을 다닐 때 강아지 유치원에 하루를 맡기는데 알림장이 오면 팔불출처럼 옆에 계신 동료에게 자랑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유기견 입양, “고민 중이라면 망설이지 마세요”

산책을 나온 하루의 모습. 산책을 굉장히 좋아해 나올 때마다 신나게 뛰어다닌다. 최민석 기자

하루 같은 유기견이 입양을 가기까지는 수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주인에게 버려진 동물이라는 편견, 품종에 따른 호불호, 그리고 입양 후 적응에 대한 두려움까지. 여러 가지 걱정들이 유기견 입양을 주저하게 만들죠. 사실 연우씨도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무려 2년간이나 실행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작은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지, 준비가 된 상황인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죠.

연우씨가 선글라스 착용에 성공한 하루를 안고 춤을 추고 있다. 최민석 기자

지금은 고민했던 시간이 후회가 될 정도라고 합니다. 하루 덕에 연우씨 삶은 놀라울 만큼 풍요롭게 변했거든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 하루가 만든 변화였습니다. 연우씨는 “지금은 고민했던 그 시간에 한 생명이라도 더 빨리 입양해서 좋은 환경에서 같이 지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고민할 시간에 그냥 입양하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애인 체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연우씨는 장애견이나 성견 입양에 대해서도 지나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도 건강하다가도 아플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든다. 강아지도 똑같다”면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모든 과정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연우씨와 하루의 모습. 연우씨는 하루가 산책할 때마다 왼쪽 귀가 접히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최민석 기자

마지막으로 연우씨는 이런 당부를 전했습니다.

“하루가 번식견 출신이라고 측은하게 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안타깝게 보지 않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루의 지난날은 마음 아프지만 하루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어요.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착하게, 항상 예의 바르게 잘 지낼 거예요. 동정의 시선보다는 유기견들이 사는 지금을 바라봐주세요.”

최수진 기자 orc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