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신예은 “영서 만나 내가 가진 장점 먼저 보게 돼”

입력 2024-11-22 08:05
'정년이' 스틸컷. tvN 제공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시기, 질투하고 음해해서 끌어내리려는 2인자. 이런 구도는 주인공의 극적인 성장 서사를 위해 영화, 드라마에서 흔히 재현돼 온 방식이다. 하지만 ‘정년이’의 허영서(신예은)는 그런 클리셰(틀에 박힌 설정)를 시원하게 깬다. “치사하게 수작 부려서 이길 거면 진작 할 수 있었어. 난 내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이길 거야”라고 정년이(김태리)에게 당당하게 외치는 영서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응원을 보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회의실에서 만난 신예은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누구나 1등 해보고 싶지 않나. 그런 마음을 영서가 잘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영서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겠구나 싶었다”며 “사람은 누군가의 실패, 좌절에 안도하면서 자신을 높이기도 하는데 영서는 그런 애가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배우 신예은. 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예고를 나와 연기예술학과에 진학한 신예은은 학창 시절 영서와 마찬가지로 2인자였던 적이 많았다고 했다. 실기평가를 본 점수가 벽에 붙어 공개됐던 탓에 승부욕이 저절로 자극되곤 했다. 그는 “어릴 때는 질투도 하고 경쟁심도 느꼈었다. 정년이와 영서도 어린아이들이니까 충분히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도 “다행히 저는 영서처럼 좌절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여기 왔으니까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해보는 거지’ 하면서 즐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정년과 영서 역시 서로를 갉아먹는 부정적 라이벌 관계보다는 서로의 성장을 동력 삼아 함께 발전해나가는 관계였다. 영서는 정년이가 자신이 가진 재능의 극치까지 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신예은이 영서로서 소화해내야 할 국극과 소리의 분량도 많았다. 이 때문에 소리를 준비하는 데만 1년여를 쏟아부었다.

'정년이' 스틸컷. tvN 제공

신예은은 “‘정년이’를 할 때는 다섯 개 작품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다”며 “소리가 잘 안 나와서 ‘오늘은 고음에 접근이라도 해보자’ 싶어서 연습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8시간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연습을 반복하다가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드는 긴장감을 풀어보기 위해 무작정 회사를 찾아가 직원들 사이에서 ‘사랑가’를 부른 적도 있었다.

이런 준비과정들이 막막했다는 신예은은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완벽한 소리꾼이 아니고 무용수처럼 춤을 못 추더라도 끝나고서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끔 하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고 했다. 그는 극중극으로 등장했던 ‘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쌍탑전설’ 가운데 가장 좋아한 작품으로 ‘바보와 공주’,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론 첫 국극이었던 ‘춘향전’을 꼽았다.

배우 신예은. 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예은은 ‘정년이’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웹드라마 ‘에이틴’의 도하나와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의 학창시절을 연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신예은은 상대적으로 중년에게선 인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영서라 부르며 사인을 요청하는 부모님 세대도 생겼다며 “이게 제게는 가장 큰 감사”라고 웃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다. 신예은은 영서를 만나 마음가짐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영서는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에도 더 높은 성과를 기대하는 어머니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그치는 인물이었다. 신예은은 “저도 영서처럼 제가 가진 재능이나 장점을 보기 전에 제가 가진 단점을 고치는 데에 초점을 뒀었다”며 “영서는 가진 게 많고 재능도 뛰어난데 그걸 본인이 모르지 않나. 그걸 보면서 나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시청자들도 영서를 보며 한 번쯤 용기를 갖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신예은. 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서가 국극을 사랑하게 됐다면, 저는 연기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동료들과 오랜 시간 연습하고 소통하면서 동료애도 많이 생겼고, 작품에 임하는 마음과 대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거든요. 무엇보다도 영서처럼 (남의 시선보다) 자신을 더 챙기면서,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매번 즐기진 못하더라도 가끔은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