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이하 KLPGT)가 해외에서 2부인 드림투어 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내년 1월 24일 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다마이 인다 골프클럽 BSD코스에서 열리는 KLPGA 2025 드림투어 인도네시아 여자오픈과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지 사흘간 필리핀 마닐라 소재 골프장에서 열릴 예정인 KLPGA 2025 드림투어 필리핀 레이디스 마스터즈다.
이 대회는 KLPGA 김정태 회장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이하 AGLF)과 KLPGT(대표이사 이영미)가 아시아 태평양 서킷(APAC Circuit·이하 APAC 서킷) 시리즈 투어 개최에 대한 협약 체결로 성사됐다.
드림투어가 해외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KLPGA 역사상 최초라는 게 협회측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대회는 KLPGT와 인도네시아골프협회 공동주관, 필리핀 대회는 KLPGT와 레이디스필리피나스골프투어 공동 주관으로 열린다.
글로벌 투어를 지향하는 KLPGA투어가 1, 2부 가리지 않고 해외 스폰서를 구해 대회를 개최되는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담보하지 못해 특혜성 시비에 휘말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KLPGT가 해외에서 개최한다는 2개 대회는 그럴 개연성이 다분하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저 출전 선수 선정 방식이다. 인도네시아 대회 출전 선수는 총 120명, 필리핀 대회는 134명이다. 그 중 드림투어 카테고리는 두 대회 공히 50명씩이다. 50명은 올 시즌 드림투어 상금 순위 21~50위까지 30명, 그리고 내년 KLPGA투어 시드전 탈락자 상위 20명으로 채워진다.
드림투어는 1년에 3~4차례 가량 시드전을 치른다. 시드전 대상자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21~50위 선수 등 사실상 풀시드권자를 제외한 300명 이상의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풀시드권자들에게만 2개 해외 대회 출전 기회를 제공한다는 건 특혜로 비춰질 수 소지가 충분하다.
정규튜어 시드전 탈락자 상위 20명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결코 공정한 방식은 아니다는 지적이다. 협회는 정규투어 시드전 직전에 선수들에게 해외 대회 개최 건을 공지한 상태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정규투어 시드전이 드림투어 시드전을 병행하는 꼴이 되므로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상금이다. 2개 대회 공히 총상금액이 30만 달러(약 4억원)다. 올해 치러진 20개 대회 드림투어 총상금액 16억9000만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적잖은 금액이다. 당연히 입상 선수들에게 분배되는 상금액이 클 수 밖에 없다.
각 대회 우승 상금은 6000만 원 정도로 예상된다. 이는 올 시즌 풀시드권자로 드림투어 상금왕을 차지한 송은아(22)가 1년간 벌어 들인 5283만7597원보다 700만 원 이상 많다. 2개 대회 꼴치 상금만 합하더라도 올해 드림투어 단일 대회 우승 상금에 육박하는 1000만 원이다.
그런데 이 상금액을 시즌 상금액에 반영한다고 한다. 엄청난 특혜로 받아 들여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50명의 선수가 2개의 해외 대회에서 모두 상금을 획득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입상만으로 정규투어 시드 획득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는 건 자명하다.
KLPGA는 드림투어 상금 순위 상위 20명에게 익년 정규투어 진출권을 부여하고 있다. 드림투어 선수들이 연간 최소 1억 원의 경비를 들여 가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하는 이유다.
올해 상금 순위 20위로 내년 정규투어 입성에 성공한 조이안(20·CJ)이 획득한 상금은 2240만3885원이다. 그것만 놓고 보더라도 2개 해외 대회 상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는 가늠되고 남는다.
사실상 내년 드림투어 상금 순위는 이 2개의 해외 대회 결과로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이 대회 출전 자체가 ‘로또’나 다름없는 셈이다.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건 당연하다.
한 선수의 부모는 “이미 풀시드에 보너스성 상금까지 획득한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들을 따라 잡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알려진 대로 대회가 진행된다면 사실상 내년 드림투어를 뛸 의미조차 없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결코 엄살은 아닌듯 하다. 그런 점에서 2개의 해외 대회가 내년 드림투어의 공동화(空洞化)를 몰고올 블랙홀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드림투어는 KLPGA투어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하는 화수분 역할을 한다. 올 시즌 맹활약을 펼친 윤이나(21·하이트진로)와 박현경(24·한국토지신탁) 등 KLPGA투어를 대표하는 대다수 스타 플레이어들은 죄다 드림투어를 거쳤다.
드림투어라는 저변이 무너지면 현재 상종가를 치고 있는 KLPGA투어의 인기도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뿐만 아니다. 드림투어를 지탱하는 400여명의 예비 투어 프로들이 활동하는 3부격 점프투어 근간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간과돼서는 안된다.
거센 항의가 잇따르자 KLPGT 이영미 대표는 “이사회 의결 사항이라 대회는 예정대로 개최된다”라며 “다만 내달 열릴 예정인 이사회에서 상금 반영이 아닌 포인트 반영을 놓고 논의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상금이든 포인트 반영이든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갖는 박탈감은 매일반이다. 한 마디로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회 개최에 대한 이사회 의결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회 개최에 대한 의결이었지 상금 반영 등과 같은 구체적 내용은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개 해외 대회 개최권자(Organizer) 지위를 갖는 AGLF는 지난 5일 회원사에 대회 개최 공문을 처음 알렸다. 그에 앞서 지난 4월12일 정기 이사회에서 ‘아시아 퍼시픽 서키트’ 추진을 논의한 바 있지만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항간에서는 연임을 염두에 둔 김정태 회장의 때늦은 ‘치적 쌓기’ 일환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물론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가 없다. 지난 2021년 3월11일에 임기 4년의 제14대 회장에 취임한 김회장이 임기 만료를 4개월여 남긴 시점에서도 아직 공식적인 거취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 그런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회장이 (사)AGLF의 회장을 겸하고 있다는 것도 2개 해외 대회 개최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김회장은 임기 2년째인 2023년 3월에 AGLF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사임의 직접적 원인이 건강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겸직으로 인해 우려된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취해진 조치였다.
하지만 당시 사퇴는 ‘꼼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확인 결과 등기상 회장은 김정태 그대로였다. 이에 AGLF 박폴 사무총장은 “총회에서 회원사들이 후임자가 나올 때까지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해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라며 “후임자만 나오면 언제든지 사임하신다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배나무 아래에서는 갓 끈도 고치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괜한 오해를 부를 행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김정태회장은 KLPGA투어 대회 기간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AGLF 대회에 참석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그러면서 KLPGA회장직은 AGLF 몸집 부풀리기를 위한 수단이 아닌가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내년에 개최 예정인 2개 해외 대회도 그런 오해를 야기하기에 충분한 소지가 있다. 따라서 결자해지의 자세로 김회장이 나서서 오해 요인을 제척해야 한다.
많은 드림투어 선수들은 문제가 된 대회 출전을 위한 퀄리파잉을 실시하거나 드림투어의 상금 순위나 포인트에 전혀 상관없는 현지 프로골프 단체 주관 대회로 치르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아시안투어 성적을 KPGA투어 성적에 반영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든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대회 요강에 상금 반영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벤트 대회인 줄 알았다고 KLPGT에 항의하자 “드림투어이니 상금 반영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핀잔이 돌아왔다는 한 선수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아 왠지 씁쓸하다.
“50명의, 50명에 의한, 50명을 위한 드림투어. 나머지 300명은 드림투어를 대회를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