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입대 의향 조사에 전공의들 “복귀 겁박? 응답 못해”

입력 2024-11-20 17:05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20일 의료 관계자들이 응급실 대기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씨는 18일 병무청으로부터 ‘입대 의향’을 묻는 안내문을 받았다. 의무사관후보생인 A씨는 이미 2025년 3월 입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사에는 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A씨는 “입영이 4년씩 밀릴 수 있다는 고지는 복귀하라는 겁박”이라며 “법적으로 답변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20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병무청의 입대 의향 조사에 응답하지 말자는 전공의들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이 조사는 의무사관후보생인 사직 전공의 3000여명을 대상으로 2025년 입대 의향을 묻는 것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역·보충역 분류와·입영 시기 등의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공의들 사이에선 정부가 입영 대기가 길어져 발생할 수 있는 행정 소송을 피하려고 조사를 진행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병무청 안내문에는 ‘실제 입영까지 1년에서 4년까지 대기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사직 전공의 B씨는 “속이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나도 응답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1~4년 입영 대기 가능성이 고지된 만큼 응답할 경우 입대가 4년 미뤄지는 데 동의했다는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직 전공의 C씨도 “(조사에) 대응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의무사관후보생 수련 서약서에 적힌 ‘(수련 중단 시) 가장 가까운 입영일에 입영해야 한다’는 문구를 근거로 입영 대기가 길어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공의 응답률이 저조할 경우 국방부·병무청은 군의관·공보의 수급 계획을 세우는 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조사는) 최장 4년 대기에 대한 동의를 받으려는 취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직 전공의들로서는 입대에 관한 본인 의사를 밝힐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임무영 변호사는 “의무사관후보생 입대는 군의관·공보의 수급 계획을 고려해 진행된다”며 “적절한 시기와 시점을 정하고 누구를 우선 입대시킬지는 정부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실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5년도 의무장교 직접 지원제도 신청 현황’에 따르면 내년 입영 대상자는 의무사관후보생(의과·치과·한의과)과 의무장교 직접 지원자(치과·한의과 제외)를 합친 3525명이다.

서울 한 의과대학의 빈 강의실에 지난 11일 출석부를 넣는 출석함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 해 평균 의무사관후보생 입영 대기자 1000여명이 군의관·공보의로 차출된다. 이들은 일반 사병으로 입대할 수도 없다. 사실상 2000여명이 내년부터 입대 지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한 수련병원 병원장은 “입대가 최대 4년씩 밀리면 돌아올 자리도 없게 된다”며 “정부는 3월에 복귀할 의향이 있는 사직 전공의에 대해선 징집을 연기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