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끊어지는 것”···폐쇄 병동 중독자 집단 상담 가보니

입력 2024-11-20 16:46 수정 2024-11-20 17:13
질병코드 F19.2 여러 가지 약물을 경험하며 중독된 ‘멀티 유저’가 늘면서 생긴 마약 중독자들에게 붙여지는 코드다. 현재 국내에 폐쇄 병동을 운영하며 마약류 중독자 치료에 나서고 있는 곳은 인천 참사랑병원과 경남 국립부곡병원뿐이다. 그중 참사랑병원엔 매주 한 차례 진행되는 특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 회복을 위해 치열한 고군분투가 벌어지는 그 현장을 지난 12일 찾아갔다.
회복자 목사, 중독자들을 만나다
신용원 인천 참사랑병원 원목이 지난 12일 진행된 마약 중독자 집단 상담에서 진정한 회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병원 1층 복도를 따라 가장 안쪽 공간으로 들어서자 햄버거와 음료가 놓인 기다란 테이블 양쪽으로 나란히 앉은 15명의 남녀가 보였다. 테이블 끝에 앉은 백발의 한 중년 남성이 오늘 처음 왔다는 청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주종목이 뭐야?”
“필로폰이요.”
“마약은 마귀가 준 약이어서 마약이야.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가 안 돼.”

중년 남성은 이 병원의 원목 신용원(59·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 목사다. 화요일 오후면 이곳에서 짧은 예배와 함께 집단 상담을 진행한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참가자들은 나이도 성별도 살던 곳도 중독에 빠졌던 마약의 종류도 달랐지만 신 목사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17세 때 처음 마약에 손을 대 서른 넘도록 중독자로 살았고, 지난 27년을 마약 중독자 회복을 위해 살아온 신 목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상담은 90분 가까이 이어졌다. 신 목사는 지나온 삶만큼이나 거칠어진 목소리로 회복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들을 단호하게 토해냈다.

“단약(斷藥)을 유지한다고 회복자가 되는 게 아니야. 중독자는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고, 그 관계가 회복돼야 회복자가 되지. 중독자라고 무의도식해도 된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야 해.”

신 목사가 “마약은 뭐다?”라고 묻자 참가자들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끊어지는 것!” 그는 상담 시간이 끝나고도 공간에 남은 이들을 살뜰히 챙기며 자활을 위한 애견미용 학원은 잘 다니고 있는 지, 일러준 대로 말씀 묵상은 하고 있는 지 근황을 나눴다.

지난 6월부터 폐쇄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김현복(가명·26)씨는 “처음엔 ‘기독교 꼰대’가 무슨 상담을 하나 싶었는데 거친 말투와 표정 속에 내가 회복해나가길 간절하게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예배까지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살면서 처음 만난 어른 같은 어른”이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약은 영적인 문제, 관계 회복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해결”
마약 중독 회복자와 가족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신용원 목사)에서 지난 17일 예배 후 신용원 목사와 성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 제공

병원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인천 남동구엔 신 목사가 1997년 문을 연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사무실이 있다. 이곳에선 마약류 중독 회복자들이 자활하며 생활하고 있다. 신 목사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마약 중독자 8명과 신혼집에서 같이 살면서 시작된 것이 지금은 중독자와 그 가족들까지 100여명이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됐다”고 설명했다.

중학생 때 마약에 빠져 30년을 중독자로 살았던 남철우(48)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대마초 필로폰 러미널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마약에 빠져 살면서 수도 없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기간을 합치면 족히 10년은 복역했을 것”이라고 했다. 남씨의 삶은 교도소에 마약 중독 교육을 하러 온 신 목사를 만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마약 중독 회복자와 가족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신용원 목사)에서 지난 17일 예배 후 신용원 목사와 성도들이 교제를 나누고 있다. 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 제공

그는 “나 같은 놈한테도 하나님이 예비해 둔 계획이 있다는 게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마약을 끊게 됐다. 신앙의 힘이었다”며 “그 후로는 아내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산다”고 전했다. 남씨는 3년째 식판 납품 업체에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근무하며 신 목사와 함께 회복이 필요한 마약 중독자들의 멘토가 돼주고 있다.

신 목사는 “재활은 신체적 회복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면 자활은 영적인 문제와 관계 회복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이라며 “누군가는 ‘종교적 편향’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지난 27년간 중독자와 살아오며 임상한 분명한 결과값”이라고 말했다.
조기 예방 교육, 중독 초기 치료 중요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이사장 이선민)가 매주 화요일 부산시 수영구 수영로교회 엘레브관에서 진행 중인 마약 중독 당사자 모임 모습. 연구소는 매주 목요일 같은 곳에서 중독자 가족 모임을 진행한다.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 제공

마약 사범의 연령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황 속에서 조기 예방 교육, 중독 초기 치료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마약 중독자 가족들과 매주 소그룹 모임을 진행 중인 이선민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 이사장은 “저출산 극복 문제보다 시급한 것이 청년들의 마약 중독 문제”라며 “청년들이 스스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마약을 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마련하고 처벌이 무서워 초기 치료 시기를 놓친 채 숨어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등을 잘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의 자녀도 현재 전문 병원에 입원해 마약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초·중·고교에서는 교육청 등을 통해 마약 예방 교육이 시행되지만, 대학은 사각지대와 마찬가지”라며 “성인이 된 학생들은 마약을 그저 도수가 높은 술이나 기호식품 정도로 여기는 등 그 심각성과 위험성을 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학교, 캠퍼스 사역 단체가 하나가 돼 지금부터라도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한다”면서 “한국교회 역시 마약중독자를 범죄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선교지라 생각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직 국내에는 전무한 기독교재활센터 건립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마약 중독 회복 사역, 소중한 영혼 살리는 일”
딸이 현재 인천참사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유지혜(가명·52)씨는 중독성이 높은 위험 약물이 무분별하게 처방되지 않도록 막을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의료진이 책임감을 갖고 약물 오남용을 막는 일에 나서달라고 했다. 유씨는 “젊은이들이 신경통을 핑계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찾는데 제대로 된 확인 없이 뭉텅이로 약을 조제해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실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의 마약 중독 소식을 처음 접하고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은데 마약을 관리하고 중독자를 치료할 원스톱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교회 역시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중한 영혼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두고 전문 사역자를 배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며 “국가와 교회가 서로 손잡고 그 기반을 잘 마련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교회에서 이뤄진 유씨와의 인터뷰 도중 인천참사랑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현재 폐쇄병동에 머무르는 그의 딸을 내일부터 일반병동으로 옮겨보자는 담당 간호사의 전화였다. 며칠 후인 18일 유씨가 이미지로 보내 온 딸과의 카톡 대화에는 더 반가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딸이 큐티(QT)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유씨는 “딸도 마약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경험이 타인에게 타산지석이 되길 바라고 있다”며 “하나님 말씀 안에 산다면 마약 등 모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