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식빵 좀 만들어줄 수 있나요?”
경기도 포천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송지혜(40)씨는 두 달 전쯤 한 손님으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받았다. 메뉴에도 없는 ‘밤 식빵’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80대쯤 된 듯한 그 손님은 자신의 아내가 암 투병 중이라며 이런 부탁을 하게 된 사정을 털어놨다. 아내가 좀처럼 먹지를 못하는데, 평소 좋아하던 밤 식빵이라면 입맛이 돋지 않을까 싶다는 게 그의 사정이었다.
송씨는 사실 그 손님을 카페 오픈 초기였던 지난 8월 말부터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손님이 매일 아침 송씨의 카페를 지나가면서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빵들을 자세히 살펴봤기 때문이었다. 동네 어르신들과 환경미화 봉사를 하는 그는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길에도, 집으로 돌아갈 때도 송씨가 만든 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송씨는 카페 앞을 서성인 지 며칠 만에 들어와 사정을 털어놓는 그를 보며 12년 전 고인이 된 어머니를 떠올렸다. 송씨의 어머니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터였다. 송씨는 미안해하는 손님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카페 운영 틈틈이 밤 식빵 만드는 방법을 연습했다.
이후 며칠 뒤 찾아온 손님에게 갓 만들어 따뜻한 밤 식빵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했다. 무료로 선물하고 싶었지만, 손님이 혹여 동정처럼 느낄까 염려돼 재료값 정도만 받았다고 한다.
이 손님과의 사연이 유독 기억에 남았던 송씨는 최근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글을 올렸다. 그가 올린 글에는 “사장님 참 따스한 분이시네요” “참 따스한 이야기” 등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송씨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어머니 생각에 그 손님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저도 어머니가 아프실 때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수소문해서라도 꼭 구해드리곤 했어요. 조금이라도 드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 마음을 잘 아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죠.”
송씨에게 밤 식빵을 구매한 손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카페를 방문했다. 송씨가 반가운 마음에 “밤 식빵은 잘 드셨느냐”고 묻자, 그 손님은 “잘 먹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손님은 이어 “잘 먹고, 갔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자신의 아내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었다.
송씨는 “그 손님은 그 뒤로 다시 오지 않으셨다”며 “혹시 오신다면 따뜻한 빵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다른 빵집이 있는데도 굳이 저희 가게에 오셨던 것은 아내 분에게 갓 만든 빵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당일 제작, 당일 폐기’를 원칙으로 하는 자신의 빵집을 그 손님이 일부러 찾아온 것 같다는 취지다.
송씨가 메뉴에 없는 빵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빵을 너무 먹고 싶은데 당뇨 때문에 먹지 못한다는 한 할머니를 위해 한달 동안 ‘건강한 빵’을 연구해 만든 적도 있었다. 송씨는 이처럼 ‘빵’에 진심인 이유에 대해 “베이킹이 제게 삶의 용기를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7~8년간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남편 없이는 집 밖을 나가지 못했어요. 그러다 용기를 내서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고 삶이 달라졌어요. 베이킹을 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어요.”
송씨는 매일 아침 5시30분에 출근해 정성을 담아 빵을 만든다. 언제나 갓 구운 빵을 손님에게 내놓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그는 “갓 구운 빵이 주는 따스함처럼, 제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온기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제가 베이킹을 통해 용기를 얻은 것처럼 제가 드릴 수 있는 것들은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