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간 모은 십자가만 약 2000개…“십자가 수집은 사명”

입력 2024-11-20 11:54
지난 19일 경기도 의왕 색동교회에서 만난 송병구 목사. 그는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전하는 것이 곧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72세를 일기로 별세한 독일인 선교사 루츠 드레셔(한국명 도여수)는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 빈민 선교 사역을 벌였고 한반도 평화 운동에도 참여한 한국사랑이 각별했던 선교사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22년 송병구(63·경기도 의왕 색동교회) 목사에게 자신이 평생 간직한 십자가 5점을 맡겼다고 한다. 그중엔 그가 20대 시절부터 간직한 십자가도 있었다. 지난 19일 색동교회에서 만난 송 목사는 드레셔 선교사와 함께했던 추억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십자가들을 맡기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들 십자가엔 내 삶이 담겨 있다고. 그 말이 제겐 자신이 걸어온 십자가의 삶을 기억해달라는 뜻으로 들렸어요.”

십자가 수집 30년, “취미가 아닌 사명”

드레셔 선교사가 가장 귀중한 애장품이었을 십자가들을 맡긴 것은 송 목사의 유별난 십자가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십자가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송 목사가 십자가 수집을 시작한 때는 1994년 12월. 그즈음 독일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송 목사는 보훔시의 성탄 장터에서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는 문구가 새겨진 주석 십자가를 샀고 십자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십(十)자 형태를 띤 물건만 봐도 눈길이 가는 ‘십자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다음부터 송 목사는 세계 각국의 십자가를 모았고 그렇게 수집한 십자가가 현재는 약 2000점에 달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십자가 수집은 어떤 의미일까. 송 목사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명이 됐다”고 했다.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2005년 개최한 십자가 전시회. 그는 관람객의 뜨거운 반응을 마주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한국교회 성도들의 십자가 사랑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십자가 수집과 십자가 연구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작업이 됐다.

연구에 몰두하면서 십자가를 다룬 책도 여러 권 냈다. 십자가 전시회도 숱하게 열었다. 유명세 덕분에 겪은 십자가와 관련된 일화도 한두 개가 아니다. 가령 지난 15일에는 한 할머니가 색동교회를 찾아왔다고 한다. 송 목사의 십자가 이야기를 다루는 C채널 프로그램 ‘나의 십자가: 세계의 십자가가 나의 곁으로’를 보고 부산에서 의왕까지 오게 됐다는 할머니였다.

“올해 여든일곱 살인 할머니였어요. 방송을 보고 저를 꼭 만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할머니는 손수 바느질 해서 만든 십자가 작품을 제게 선물해주셨어요. 교회에 있는 십자가들을 보며 정말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DMZ에 십자가 박물관이 생기길”

송 목사가 그동안 수집한 십자가 중 상당수는 이미 상설 전시 중이다. 전시관이 있는 곳은 경기도 김포 고촌교회(박정훈 목사)와 서울 도림교회(정명철 목사). 이들 교회에 마련된 전시관엔 송 목사가 모은 십자가 가운데 각각 600여점, 400여점이 전시 중이다. 나머지 십자가들은 1년에 3~4회 열리는 순회 전시회를 통해 한국교회 성도들과 만나고 있다. 송 목사는 십자가에 담긴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십자가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통해 가르쳐준 것들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계속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십자가인 셈이죠.”

송 목사의 꿈은 십자가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최적의 장소는 한반도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난 곳인 비무장지대(DMZ) 주변. 송 목사는 “분단은 우리 민족이 걸머진 십자가”라며 “DMZ에 십자가 박물관이 생기면 많은 이가 그곳에서 한반도의 아픔을 되새기고 세계 평화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왕=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