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해산 투입된 공수부대원, 국가유공자 됐다

입력 2024-11-20 07:32 수정 2024-11-20 10:56
광주 북구에 있는 국립 5·18 민주 묘지.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해산 임무에 투입됐다가 총상을 입고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공수부대원이 법원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제1부(부장판사 민지현)는 A씨(66)가 강원서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 취소 행정 소송에서 최근 제1심의 A씨 패소 판결을 뒤집고 승소 판결했다.

11공수여단 소속이었던 A씨는 1980년 5·18을 불법시위 사태 등으로 규정한 군 상부의 진압 명령에 따라 정찰 등 임무에 투입됐다가 시위대가 발사한 총기의 유탄이 왼쪽 팔에 박히는 상처를 입었다. 또 부대원이 총에 맞거나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2017년 5·18을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가 흥행하며 진압군을 향한 부정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군 동기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A씨는 보훈지청에 “임무 투입으로 팔에 골절상을 입고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까지 갖게 됐다”며 같은 해 10월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서를 냈다.

보훈지청은 2018년 1월 골절상에 대해서만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에 대한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 소송을 냈다.

제1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군 직무 수행과 A씨의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간 관련이 없고 증상은 개인 분쟁이나 5·18 진압군 비판 여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보훈지청에 낸 상이 발생 경위서에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등 트라우마에 시달림’이라고 쓴 점에 주목했다. 그의 정신적 상이가 분노조절 장애가 전부라는 전제하에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A씨가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하고 며칠 뒤 PTSD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받은 점,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한 뒤 재차 PTSD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그의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등이 단순히 5·18 진압군 비판 여론에서 비롯됐다고 치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보훈지청이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 14일 확정됐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