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동재…이준혁 “클리셰 깨는 인물, 재미있어 여기까지 와”

입력 2024-11-19 16:34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티빙 제공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어느새 오늘”이라 말하는 악역을 어떻게 마냥 미워할 수 있을까. 분명 악역인데, 주인공을 난관에 빠트리는데도 ‘제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이해가 된다면, 이보다 매력적인 악역이 또 있을까. 한없이 가벼운 무릎에, 필요하다면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의 아부도 서슴지 않는 비호감 캐릭터지만, ‘비밀의 숲’ 검사 서동재는 이준혁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었다.

최근 전 회차가 공개된 ‘좋거나 나쁜 동재’(좋나동재)는 ‘비밀의 숲’에서 조연이었던 서동재를 중심인물로 내세워 제작된 스핀오프(파생작)다. ‘비밀의 숲’ 시즌2가 끝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서동재가 여전히 사랑받는 캐릭터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배우 이준혁. 에이스팩토리 제공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혁은 “사실 누가 동재를 좋아할까 생각했었다. 아주 대중적인 캐릭터도, 인기 있을 만한 캐릭터도 아니지 않나”라며 “독특한 작품인데 애정을 갖고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쁘다”고 웃었다.

서동재는 역할 상 악역이었지만, 시청자가 몰입할 만한 부분이 많은 인물이었다.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말과 행동도 쉽게 하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서다. 그래서 ‘스폰서 검사’란 오명도 쓰게 됐지만, 그 사실을 또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준혁은 “동재는 매번 당하고 구르고 엎어지고 맞고,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살아남는다. 그게 재밌지 않았을까. 또 직장 생활을 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공감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티빙 제공

하지만 처음 서동재란 인물을 가지고 스핀오프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리 달갑지 않았다고 했다. 이준혁은 “엄청 싫었다. ‘비밀의 숲’이 워낙 화제였지 않나. 같은 캐릭터를 또 연기한다는 게 부담이었다”며 “동재가 스핀오프로 나왔다 해서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거대한 ‘비밀의 숲’ 세계관 안에 있는 거라 부담이 너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좋나동재’에 출연한 건 순전히 시청자들의 지지와 응원 덕이었다. ‘비밀의 숲’과 달리 블랙코미디로 장르를 전환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이준혁은 “‘비밀의 숲’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절대 못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대본도 3번이나 수정됐었다”며 “장르의 틀을 바꿨기 때문에 연기 톤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개그도 할 수 있었다. 또 그사이 제가 여러 작품을 소화했던 것도 동재가 더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이준혁. 에이스팩토리 제공

시청자들 사이에서 ‘좋나동재’ 시즌2 제작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하자 그는 “‘좋나동재’의 동재는 할 만큼 다한 것 같다”면서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시즌2 출연을) 안 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만 시즌2가 제작된다면 장르가 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혁은 클리셰(진부한 표현)를 비껴가는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동재를 맡겠다고 우겼을 정도다. 그는 “늘 클리셰가 아닌 걸 쫓아간다. 그래서 동재는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주변에서 저와 안 어울린다고, (평소보다) 더 낮은 배역에 비호감이라 모두가 말렸었다”며 “하지만 저는 대본이 너무 재밌었고, 비호감인데 매력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서 맡겠다고 우겼다. 제가 우겼던 두 작품 중 하나가 ‘비밀의 숲’”이라고 회상했다.

그간 장르물에 주로 출연해왔던 이준혁은 오랜만의 이미지 변신에 나선다. 내년 1월에 방송되는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준혁은 “제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니 정상인이 없더라. 그래서 ‘완벽한 비서’는 제 필모 안에서의 클리셰를 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