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하나에 과연 몇 개의 열매가?… 제주도민도 몰라요 [제주라이프]

입력 2024-11-18 13:04 수정 2024-12-15 14:05
제주의 한 과수원에 노지 감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제주도 제공

“자, 잘 보세요. 이렇게 꼭지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익어가는 감귤을 따야 합니다. 옛날에는 한꺼번에 따서 출하했지만, 요즘은 그때그때 익은 것만 따서 소포장으로 판매하니까예~!”

지난 5일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의 한 과수원에서 감귤 수확이 시작됐다. 지난달 극조생(가장 이른 시기에 수확하는 품종) 노지 온주밀감을 수확했고, 이날부터 조생 감귤 수확이 시작됐다. 하지만 올해는 날씨가 더워 11월 중순을 넘겨야 본격적인 수확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 밭에선 60년째 감귤 농사가 이어지고 있다. 장전리에서 가장 오래된 과수원 중 하나다. 농가 관계자는 “극조생은 감귤색이 초록빛이라도 따지만, 조생은 익어야 딴다”며 작업에 앞서 주의를 신신당부했다.

11월부터 제주에서 조생 노지감귤 수확이 시작된다. 보통 인부 한 사람이 하루에 500kg을 수확한다. 문정임 기자

같은 시각 인근에 있는 감귤거점산지유통센터에선 감귤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예전에는 5㎏·10㎏ 단위 포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2.5㎏·3㎏·5㎏ 소포장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선 장전 등 인근 애월지역에서 생산된 원물을 포장해 전국 하나로마트로 보낸다.

이날 포장된 감귤은 지난달 수확한 극조생이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로 나갈 물량이다. 감협 유통센터 관계자는 “10~2월에는 노지감귤, 1~4월엔 만감류, 4~10월엔 하우스 감귤 수확이 계속 이뤄지기 때문에 유통센터도 1년 내내 가동된다”고 말했다.

“늦가을 제주는 바빠져요”
11월 제주 섬은 온통 노란빛이다. 짙은 파란 하늘 아래 과수원마다 황금빛 감귤이 주렁주렁이다. 이 무렵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감귤이 익으면 제주에선 일손이 귀해진다. 모두가 한철 감귤 따기 아르바이트에 나서기 때문이다. 중장년 여성이 주로 일하는 식당들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인다.

11월부터 제주에선 조생 노지감귤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주도 제공

장전리 과수원 관계자가 감귤 따기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문정임 기자

감귤 농가에서도 희비가 갈린다. 비슷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과수원보다 선과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중간 상인들이 운영하는 개인 선과장은 물량이 많고 비가 와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일수가 길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감귤 주산지인 서귀포시에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공공형 외국인 계절 근로자가 투입되기도 한다. 지난해엔 베트남에서 온 41명의 근로자가 같은 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2000개 감귤 농가에 배치돼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올해는 49명이 입국해 이달 1일부터 감귤 농가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서귀포시와 농협 관계자가 베트남 남딘성을 찾아 현지 면접을 통해 선발한 근로자들이다.

지난여름에는 충북도가 겨울철 제주 감귤유통센터에서 일할 도시농부 200명을 모집 공고했다.

육지부에선 겨울이 농한기라 일자리가 부족하고, 제주는 겨울이 감귤 농번기로 일손이 부족하다. 충북도와 제주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생 일자리사업에 손을 맞잡았다.

선발된 도시농부는 제주 감귤유통센터에서 선별, 세척, 포장, 운반 등의 일을 한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하고, 4대 보험과 점심, 주휴수당, 시간외수당, 휴일근로수당 등을 지급받는다. 숙소와 항공권, 제주도 내 이동수단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감귤유통센터에서 포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문정임 기자

하루 일당은 9~10만원이다. 컨테이너를 날라야 하는 남자들은 15만원으로 좀 더 많다.

감귤 따기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좁은 나무 사이에서 허리를 숙이고 열매를 따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온몸이 쑤신다.

인부 1인당 하루 수확량은 500㎏내외. 10㎏ 감귤 상자 50개를 매일 혼자 채워야 하는 셈이다. 작업자들이 밭 사이에 따둔 귤을 온종일 차량으로 옮기는 일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수확철이 끝나면 정형외과나 한의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린다.

제주도와 감귤
감귤은 날이 따뜻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만 재배되었다.

고려사 세가(世家) 7권의 기록을 보면 문종 6년(1052년) 3월에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개정 결정한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적어도 그 이전부터 제주도의 감귤이 세공으로 바쳐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작한 기록화첩 ‘탐라순력도’에는 총 41점 중 감귤과 관련한 그림이 3점이나 등장한다.

조정에 올려보낼 감귤을 선별하는 ‘감귤봉진’(柑橘封進), 제주성 안에 있는 감귤원을 그린 ‘귤림풍악’(橘林風樂), 진상 감귤을 재배하기 위해 서귀포시 강정동에 설치한 고둔과원을 묘사한 ‘고원방고’(羔園訪古)가 그것이다.

제주도 기록화첩 '탐라순력도' 중 '감귤봉진'의 일부. 감귤을 선별하는 모습과 감귤을 담을 나무 상자를 만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중 ‘감귤봉진’은 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누각 망경루 앞에서 조정으로 올려보낼 귤을 선별하고 검사하고 포장하는 그림이다. 여인들이 귤을 선별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아래엔 감귤을 담을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감귤봉진에는 감귤 품종별로 얼마의 물량을 조정에 올려보내야 하는지가 적혀 있다.

감자(柑子)가 가장 많은 2만5842개이고, 당유자 4010개, 동정귤 2804개, 유감 2644개, 유자 1460개, 금귤 900개 등이다. 다 합치면 4만개쯤 된다. 조선시대 감귤은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일 간격으로 20차례 올려보냈다.

감귤은 생과 만이 아니라 껍질도 진상했다. 감귤 진상은 1894년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감귤 식재를 기피하기도 했다.

당시 기르던 감귤 재래종 중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유자·동정귤·진귤 등 10여종 정도다.

제주시 귤과 서귀포 귤이 다르다고?
제주에서 재배되는 귤은 크게 노지에서 재배하는 온주밀감과 만감류로 나뉜다. 일반 과수원에서 비와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자라는 것이 노지감귤이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한다. 빨리 따는 감귤을 극조생이라고 하는데, 극조생은 10월부터 따기 시작한다.

만감류는 노지감귤 수확이 끝난 뒤 주로 1~4월에 수확한다. 4~10월에는 하우스 감귤 출하가 이어진다.

지난 4월 22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한 과수원에서 2024년산 첫 하우스감귤이 출하됐다. 극조생 온주밀감을 비닐하우스에서 난방으로 온도를 조절해 키워낸다. 속껍질이 부드럽고 과즙이 많고 달다. 잎의 흰 얼룩은 칼슘제를 도포한 흔적이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제공

최근에는 풋귤이 여름철 소득 작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슷한 색깔의 청귤 품종과 달리, 덜 익은 감귤을 말한다. 예전에는 미숙과로 분류했다. 익은 감귤보다 항산화 물질이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연구되면서 2016년부터 공식 유통되고 있다.

풋귤은 1년 중 정해진 기간에만 출하할 수 있다. 보통 8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가 된다.

풋귤은 덜 익은 감귤을 말한다. 제주도 제공

감귤이 귀하던 시절에는 감귤나무 몇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가 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최근에는 통영·고흥·완도·거제·남해·금산 등 남부 지방에서도 일부 감귤류가 재배되고 있다. 그럼에도 감귤은 여전히 제주도가 전국 최대 주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무려 99%를 차지한다.

제주에서는 감귤 유통을 단속할 때 제주시에서 재배한 귤을 서귀포산으로 속여 판매하다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기사를 쓸 때마다 회사에서 부장이 전화를 걸어온다(1~2년 단위로 데스크가 바뀌기 때문에). 같은 제주도인데 뭐가 다르냐고.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간에도 동서남북 날씨가 다르다. 물론 제주도의 면적이 서울시의 3배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작은 섬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서귀포시는 제주시보다 기온이 비교적 온화하게 일정하고 일조량이 많아 귤이 더 맛있다.

서귀포 농기센터가 희망 농업인을 상대로 극조생 감귤 재배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서귀포 농기센터 제공

일차 산업의 주축
2023년산 제주도 감귤 총수입은 1조3248억원이었다. 3년 연속 1조 시대를 유지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제주도는 신맛을 꺼리는 대도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당도 감귤 생산 기술을 개발·전파하고, 상품 외 감귤 유통을 막기 위해 특히 출하 초기 집중 단속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제주도 농업기술원 미래농업육성관에서 레드향 열과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기관 간 업무협의회가 열리고 있다. 올여름 폭염으로 제주지역 레드향 농가가 예년에 비해 심각한 열과 피해를 입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제공

기후 위기는 제주 감귤에도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 8월 이후 유례없는 불볕더위와 국지성 소나기로 과육이 갈라지는 열과 발생이 많았다. 과실 표면이 강한 햇볕에 타들어 가는 일소 피해도 컸다.

이 때문에 앞서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시행한 올해 ‘노지감귤 착과 상황 조사’에선 감귤나무 한 그루 당 평균 열매 수가 878개로 전년보다 143개나 많게 나타났음에도, 실제 수확량은 전년보다 7%가량 줄어든 규모(37만8000t)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0년 이후 가장 적은 양이다.

다행인 것은 2024년산 감귤은 평년보다 당도가 높고 산 함량이 낮아 품질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입맛과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제주도 감귤 유통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제주도는 최근 감귤 조례를 개정해 착색률과 무게에 따른 유통 감귤 기준을 삭제했다. 대신 당도와 산도의 기준을 강화한 새로운 유통 기준을 도입해 지난 10월 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같은 규정에서 강제 착색 행위나 상품 외 감귤 유통에 대한 벌칙도 대폭 강화했다.

품종 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일본 품종인 한라봉·천혜향·레드향·황금향을 대체하기 위해 우리가 개발한 가을향·달코니·설향·우리향' 등 신품종 만감류를 실증 재배하며 상품성을 타진하고 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자체 개발한 신품종 만감류 '우리향'의 실증 재배 모습. 제주도 농업기술원 제공

귤 맛있게 먹는 법
고급 과일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2000년 이후에는 제주지역에 만감류 재배가 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만감류 생산량은 6만5800t에서 지난해 11만6559t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노지 온주밀감은 57만3442t에서 40만5885t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만감류는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노지 온주밀감이 주로 자가소비용이라면, 만감류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목장 인근에서 귤 껍질 말리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1월 모습. 뉴시스

감귤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제철 감귤을 사야 한다. 중간보다 살짝 작은 크기가 맛이 좋다. 일반적으로 귤이 너무 크면 싱겁고, 너무 작으면 신맛이 강하다. 꼭지 주변이 매끈한 것보다 울퉁불퉁한 것이 당도가 더 높다.

제주에서는 귤을 통째로 구워 먹기도 한다. 그러면 파인애플처럼 단맛이 더 강해진다. 가정에서는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 프라이팬을 사용할 수 있다.

귤은 과육은 물론 껍질에도 비타민C와 플라노이드 함량이 많다. 추운 날씨에 건강을 지키려면 귤과 함께, 귤껍질을 물에 달여 먹어도 좋다.

뉴시스

매년 날씨가 추워지면 제주 사람들은 안부처럼 집에 귤이 있는지 묻는다. 현관문을 열어 보면 누가 가져다 둔지도 모를 귤이 컨테이너에 한가득 쌓여있을 때도 많다.

제주도에선 2만 가구가 감귤을 재배하며 국내 최대 주산지의 명성을 지켜가고 있다. 도 전체 농가(3만357가구, 2023년 기준)의 60%가 넘는다.

이들 중에는 장전리 밭주인처럼 60년 넘게 귤 농사를 지어온 사람도 있고, 귤 농사를 위해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온 새내기 농부도 있다. 각자의 꿈은 다르지만 제주 과원의 감귤은 볕과 따스한 온도를 머금고 너나없이 익어간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