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발레시즌을 위한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이하 부산 시즌 발레단)이 지난 15일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무대에 오른 ‘샤이닝 웨이브’(~17일까지)다. 부산발레시즌은 2026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는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성공적인 건립을 기원하고 발레 전문인력 육성과 발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을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는 한편 지난 3월부터 시즌 단원 18명, 프로젝트 단원 10명을 선발해 9월부터 연습했다.
‘샤이닝 웨이브’는 1부 클래식 발레 ‘파키타 그랑 파 클래식’(‘파키타’ 중 결혼식 장면)과 2부 네오클래식 창작발레 ‘샤이닝 웨이브’로 구성됐다. 난이도 높은 발레 테크닉이 필수적인 작품과 감성적인 표현력을 드러내는 작품을 통해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 셈이다.
‘파키타’는 원래 1846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나폴레옹 점령 기간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집시 소녀 파키타와 군인 루시엥의 사랑을 2막3장 안에 담았다. 파키타가 귀족의 딸인 것이 밝혀지면서 두 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마임이 너무 많고 안무가 좋지 않아서 프랑스에서는 얼마 뒤 사라졌다. 대신 러시아에서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가 1881년 ‘파키타’의 개정판을 내놓았다. 루드비히 밍쿠스의 음악을 더해 파키타와 뤼시엥의 결혼식을 치르는 3막을 추가했다. 이후 3막만을 따로 떼어 자주 공연되면서 ‘파키타 그랑 파 클래식’이라고 불렀다.
‘파키타 그랑 파 클래식’은 귀족들의 군무, 결혼식을 축하하는 하객들의 파드트루아(3인무)와 솔로춤(바리아시옹), 아이들의 마주르카, 파키타와 루시엥의 그랑 파드되(큰 2인무라는 뜻으로 앙트레-아다지오-남녀 바리아시옹-코다 순으로 진행)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솔로춤은 대부분 프티파가 그동안 안무했던 다른 발레 작품들에 나온 것들로 구성하는데, 최소 5개부터 13개 사이에서 선택해서 췄다고 한다. 다만 요즘에는 바리아시옹을 5개 정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아이들의 마주르카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즉 공연의 특징이나 출연진의 규모에 따라 춤의 구성이 달라지는 게 ‘파키타 그랑 파 클래식’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부산 시즌 발레단은 ‘파키타 그랑 파 클래식’에 18명이 출연했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많지 않은 만큼 군무를 12명으로 하고 군무 중 일부는 솔로춤을 춰야 했다.
부산 시즌 발레단은 정식으로 출범한 발레단이 아니라 올해 시즌을 위해 구성된 만큼 시즌 단원을 선발해 공연을 제작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번 ‘파키타 그랑 파 클라식’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발레 무용수 풀(Pool)에서 시즌 단원을 뽑은 데다 9월부터 시작된 짧은 연습 탓에 정교한 기량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일사불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하는 군무가 상당히 아쉬웠다. 여기에 예산 부족 탓에 무대와 의상이 상당히 소박했는데, 무대에 샹들리에나 영상이라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2부 ‘샤이닝 웨이브’는 시인 정영의 연시(8편)와 재즈뮤지션 손성제가 작곡 및 편곡한 음악을 가지고 발레리나 출신 신예 안무가 박소연과 부산시립무용단 이정윤 안무가가 공동으로 안무했다. ‘빛나는 물결’이라는 뜻의 ‘샤이닝 웨이브’는 부산 시즌 발레단의 출범에 맞춰 부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김주원 감독의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김주원 감독은 친분이 있는 정영 시인에게 창작발레를 위한 시를 부탁했고, 그렇게 해선 나온 게 8개의 연시를 텍스트로 한 ‘샤이닝 웨이브’다. 프로그램에 실린 연시를 보면 소녀와 고래, 바다라는 소재를 통해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기원과 어린아이의 꿈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지향한 창작발레 ‘샤이닝 웨이브’에는 고래, 소녀, 고래잡이 선원들, 바다의 정령들(군무) 등 모두 19명이 출연했다. 고래 역의 발레리노 윤별의 높고 우아한 점프, 소녀 역을 맡은 고등학생 발레리나의 청순한 연기 그리고 고래잡이 선원들의 강인한 춤은 영상과 음악에 맞춰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길이 간 것은 파란색과 녹색 그라데이션의 튀튀를 입고 바다 정령이 된 군무다. 12명의 발레리나는 무대를 부유하며 다양한 움직임으로 물결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이와 함께 영상도 이번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파도가 출렁거리는 바다와 별이 뜬 하늘, 바다와 하늘을 유영하는 고래의 이미지가 영상을 통해 아름답게 구현됐다. 이를 위해 무대 전체를 반투명 막으로 감싸고 무용수들이 영상 안에서 움직이게 했는데, 공연을 훨씬 풍성하고 깊이감 있게 만들었다. 다만 공연 도중 잠깐 영상이 잘못 재생된 것은 아쉬움이었다.
‘샤이닝 웨이브’는 그동안 김주원 감독이 스스로 기획하고 선보였던 ‘디어 루나’ ‘사군자-생의 계절’ ‘탱고발레 - 3 Minutes: Su Tiempo’ ‘레베랑스’ 등과 비슷한 결을 보여준다. 서사 자체는 치밀하지 않지만 춤과 함께 영상, 음악 등 시청각 요소를 통합해서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감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발레 애호가에게는 깊이가 부족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초심자에게는 발레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게 만든다.
부산 시즌 발레단은 이번 공연 외에 오는 12월 3~4일 해설이 있는 발레 갈라 콘서트 ‘화이트 발레 소네트’로 2024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까지 매년 부산발레시즌이 계속되는 한편 개관과 함께 정식 시립 발레단이 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매년 좀 더 긴 시즌과 더 많은 레퍼토리를 보여줌으로써 부산이 발레의 새로운 중심지로 차근차근 성장하길 바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