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일 군사 연합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북·러 연합훈련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양국이 나란히 비준한 북·러 군사조약이 연합훈련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 북한은 한·미·일 연합훈련을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한·미·일이 지금처럼 연합훈련을 벌이고, 북한이 북·러 연합훈련으로 맞대응한다면 한반도 위기는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반도 긴장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축소할 수도 없다. ‘안보 딜레마’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17일 “군사훈련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러 조약을 체결한 것 아니겠나.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북·러가 군사훈련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러 연합훈련은 우리 군이 연합훈련을 펼치는데 부담스러운 전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외교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러가 해상에서 연합 군사훈련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연합 군사훈련을 제안했다는 말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군 파병은 곧 북한이 러시아를 지켜준 셈이라 러시아 역시 보답 차원에서 연합훈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그는 줄곧 한·미 연합훈련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출해 왔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이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에게 뚜렷한 보상 없이 연합훈련을 기존대로 유지하자고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대북 압박 지속·강화를 위해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무기 전개에 의존할수록 트럼프는 한국에 더 큰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태림 전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는 거래주의 성격이 강해 앞으로 모든 군사협력에 대해 건건이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돈을 못 내겠다고 하면 군사협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가 이를 이용해 연합훈련 중단 카드를 꺼내 들며 트럼프와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한·미·일과 북·러 양측의 연합훈련을 모두 중단시키려는 목적이다. 연합훈련이 축소·폐지 문제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논쟁이 다시 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가 한·미·일 연합훈련을 반길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현재 트럼프 관심의 큰 부분은 중국 견제에 쏠려 있는데, 이때 한·미·일 군사협력 수위를 끌어올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트럼프 측근들은 최근 한국 외교 당국과 소통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성과로 한·미·일 군사협력을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가 아무리 실리를 중시해도 동북아 안보를 내팽개칠 수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조 석좌연구위원은 “북·러 탓에 한반도 위협이 증가하는데, 트럼프가 한·미·일 연합훈련을 축소하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의중과는 달리 러시아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등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다. 같은 맥락에서 북·러 연합훈련은 답례 차원의 상징적 행위일 뿐, 한반도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수준은 아닐 수 있다.
이 교수는 “러시아는 ‘연합훈련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왜 못 하겠어?’라는 입장”이라며 “러시아가 서방국가들을 향해 ‘북·러 연합훈련은 너희에게 달렸다’는 경고를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2번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훈련을 진행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