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차르’ 정치…의회 우회, 막강한 권한으로 속도전

입력 2024-11-13 08:18 수정 2024-11-13 08:2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실행한 인사들을 발표하며 ‘차르(Czar·러시아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차르는 장관이나 차관 등 공식 직함이 아닌 비공식적인 직함이다. 러시아 황제처럼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의회 인준을 우회해 자신의 정책 의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CNN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는 차르가 군림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가장 중요한 인사 결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대통령 당선인은 새로운 부류의 후보자, ‘차르’의 지위를 격상시켰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핵심 공약인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추방을 담당할 인사로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 대행을 발표하며, 통상적 직함이 아닌 ‘국경 담당 차르’라고 명명했다. 트럼프는 “호먼은 남부 국경뿐만 아니라 북부 국경, 해상 및 항공 보안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도 ‘에너지 담당 차르’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버검 주지사는 당초 에너지부나 내무부 등 장관 후보로 거론됐으나 광범위한 직책인 ‘에너지 차르’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고 후보직에서 사퇴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도 보건 관련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차르 같은 역할’을 맡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차르의 권한은 광범위하다. 각 부처 장관처럼 달리 상원의 인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취임 첫날부터 트럼프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 트럼프 측 인사는 CNN에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근접성”이라며 “트럼프와 길 건너편에 있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면 이미 한 발 뒤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르라는 명칭을 트럼프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에볼라 확산 방지 등 긴급한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르라는 비공식 직함을 가진 공무원 20여명을 임명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Y2K 차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에이즈 차르’ 등을 임명했다. 트럼프의 경쟁 상대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국경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은 ‘국경 차르’라고 불렸다. 민주·공화당 가릴 것 없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의회 인준 절차를 피해 속도전으로 업무를 진행할 차르를 애용해온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차르 정치’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CBS뉴스는 “차르는 대통령이 성가신 ‘견제와 균형’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며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의회의 권한의 행정부의 계획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 경험한 뒤 자기 사람을 신속하게 제자리에 배치하길 원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차르의 역할이 과도하게 포괄적이어서 법적 권한 문제가 항상 논란이 됐다. 2009년 상원 사법위원회는 행정부의 차르 남용에 대한 적법성을 따지는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위원회는 차르가 상원에서 인준을 받거나, 인준을 받은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직책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존 렛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 연합뉴스

한편 트럼프는 이날 차기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지명했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그는 최고 수준의 국가안보와 힘을 통한 평화를 보장하면서 모든 미국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 두려움 없이 싸우는 투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또 주이스라엘 대사로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중동특사로는 자신의 ‘골프친구’인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를 내정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