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오랜 기간 11월 셋째 주일에 지켜온 추수감사절을 추석 무렵으로 조정해 한국적 전통에 맞는 감사 절기를 정착시키자는 목소리가 교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적 감사 절기를 도입하자는 주장과 함께 감사의 참된 의미를 돌아보게 할 참신한 프로그램 제안도 나왔다.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은 11일 추수감사절 논평에서 “현재 한국교회의 감사절 시기는 미국 청교도들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한국의 계절적·문화적 특성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의 첫 추수감사절은 1904년 제4회 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가 “한국에서 개신교가 흥왕해짐에 감사하자”며 도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때 첫 추수감사절을 11월 11일로 정했고, 1906년 공의회 제6차 회의에서 미국 교회 전통을 따라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옮겼다. 이 결정은 1908년 노회에서 다시 채택됐고, 1914년 제3회 조선 장로교 총회에서 선교사가 처음 한국에 온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에 감사주일을 지키기로 변경했다. 샬롬나비는 이와 관련해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알렌은 1884년 9월에 왔으므로 11월 셋째 주일에 온 선교사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그 후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샬롬나비는 “한국의 추수에 맞춰 추수감사절을 추석 즈음으로 옮기면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어 감사의 의미가 더욱 효과적으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가 비단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1992년 기독교 잡지 ‘선교 21세기’는 ‘추수감사절의 현대적 조명’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적 감사 절기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추수감사절이 한국인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만큼 한국적 문화에 맞는 감사 절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글은 추석을 감사절로 삼아 그 의미를 확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추수감사절을 한국적 정서에 맞춰 추석 무렵에 지켜온 교회들도 있다. 서울 중구 경동교회(임영섭 목사)는 1974년부터 추석을 즈음한 일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왔으며, 저녁 예배를 ‘감사절을 즐기는 밤’으로 꾸며 민속놀이와 강강수월래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같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인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한문덕 목사)도 1994년부터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첫 주일을 ‘추석 감사절’로 정해 추수감사절을 대체하고 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추수감사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역사적 전통일 뿐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한국의 추수 절기는 추석이므로 한국적 감사 절기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추수감사절의 토착화 움직임은 기장 교회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12일에는 기장 교단 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한신대에서 한국적 전통을 살린 추수감사예배가 열리기도 했다. 세 번의 징 소리로 시작한 예배에서는 한복을 입은 순서자들이 연단에 올랐고 성찬식에서는 한국의 전통 떡을 사용했다.
절기 조정만큼이나 감사절의 본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감사학교 교장인 이의용 교회문화연구소 소장은 “단순히 헌금을 드리는 것을 넘어 교인들이 서로 감사의 기쁨을 나누며 감사의 의미를 생활화하는 절기로 감사절을 확장해야 한다”며 “추수감사절을 ‘지내는 감사절’이 아닌 ‘맞이하는 감사절’로 변화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각 교회가 시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감사-배려 일기 작성 △감사 대자보 게시 △감사 쿠폰 나누기 △감사 간증의 날 등을 도입해보라고 추천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