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교회, ‘멘탈케어 커뮤니티’로 나갈 길은?

입력 2024-11-12 13:30 수정 2024-11-12 13:30
고직한 선교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방주교회(반태효 목사)에서 ‘크리스천의 우울, 바로 보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사이코 패밀리’.

고직한(70) 선교사가 자신의 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흔히 아는 사이코(Psycho)가 아니다. 사이코(Psykoh). 고 선교사 가족의 성인 고(Koh)를 합친 조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정신질환을 겪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고 선교사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슬하에 둔 두 아들 하영(43)씨와 하림(41)씨는 20~30년째 조울증을 앓고 있다. 두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횟수는 17번이 넘는다. 고 선교사 부부도 대학 시절 불안장애와 신경증, 경조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은 바 있다.

고하영(왼쪽)씨와 하림씨가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다. 밝은 미소가 눈길을 끈다. 고직한 선교사 제공

고 선교사는 “저희 부부는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병을 극복했지만 두 아들의 상황은 다르다. 조울증은 쉽게 재발하기 때문”이라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역단체 JDHUB(Jesus&Disciples HUB·대표 이길주 목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방주교회(반태효 목사)에서 ‘크리스천의 우울, 바로 보기’를 주제로 마련한 포럼에서다. 우울증의 현황과 원인을 살펴보고 개인과 단체의 회복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현재 고 선교사 가족은 조울증을 치유하고 안정되면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탈바꿈했다. 유튜브 채널 ‘조우네마음약국’을 운영하며 정신질환 극복기를 공유한다. 정신질환에 관한 정보를 비롯해 신앙과 정신건강, 과학적 정보 등도 전한다.
고직한 선교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방주교회(반태효 목사)에서 ‘크리스천의 우울, 바로 보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들의 유튜브 채널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의 상담의 장으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상담자 10명 중 7명은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교회에서도 정신질환의 고통을 털어놓기 어렵단 것이다. 고 선교사는 그래서 정서·정신적 약자를 품는 교회란 뜻인 ‘정품교회’를 강조한다. 교회가 편견 어린 시선이 아닌 공감과 이해의 눈빛으로 봐달라고.

고 선교사의 발언은 최근 2025 한국교회 트렌드 키워드 가운데 ‘멘탈 케어 커뮤니티’가 꼽힌 것과 맞물린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지난 5월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국민(1000명)·개신교인(1000명)·목회자(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목회자 10명 중 6명(61.2%)은 ‘정신질환은 귀신이 들려 나타는 영적 현상일 때도 있다’고 답변했다. 뒤이어 개신교인(53.0%)와 국민(30.3%) 순으로 집계됐다. 교회 안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색안경이 여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 선교사는 “정신질환은 귀신의 씌이고 그런 것이 아닌 우리 몸인 뇌의 질환”이라며 “생물학적 취약성에 따라 앓게 된 질환이기에 정확한 정보를 통한 올바른 약 처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벽 1시든 언제든 너를 위해 있어 줄게’와 같은 말처럼 소중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선 우울증 회복을 위한 단체들의 사례도 이어졌다. 관계의 중요성을 짚는 발언들이 주를 이뤘다.

온누리교회 교인들이 정신회복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 교회 제공

‘치유와 소망의 공동체 세우기’란 제목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기원 온누리교회 회복사역본부장은 “성장과 치유, 성숙과 믿음의 진보는 모두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며 “인간이 온전함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관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케이프타운 서약은 ‘기독교 공동체들은 물리·정서·관계·영적 측면들을 통합하는 실제적인 돌봄을 통해 인간 삶의 존엄성과 신성함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돌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온누리교회 관계기술훈련 사례를 소개했다. 교회는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중심으로 우울증 치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순 우울감을 겪는 이들을 물질로 돕는 것이 아닌 음악과 미술 독서 수련회 밥상공동체 등 함께 모여 관계를 회복하고 쉼의 시간을 제공한다.

미술을 통해 우울감을 느끼는 성도들에게 쉼의 시간을 제공한다. 온누리교회 제공

한승일 서로돕는가족상담교육연구소 대표는 ‘더 넓은 마음의 안전망 구축’을 주제로 기관 차원에서의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우울감을 띤 이들에게 온정주의로 다가가선 안 된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파악하고 기관·제도 등 주변 자원을 파악해 서비스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그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유병률은 1위(36.8%)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22년 우울증 경험을 겪은 이들은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특히 20대의 경우 2018년(9만9796명) 대비 약 2배 증가한 19만4322명(2022년)으로 집계됐다.

이길주 JDHUB 대표는 “우리 주변에는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잇따라 증가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포럼을 통해 우울증의 문제를 바로 보고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