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있다. 바로 거리와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다. 서울과 대전, 영등포 지역에서는 각지의 청년들과 교회가 자발적인 사랑과 나눔으로 노숙인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맞아 음식, 예배, 겨울용품 나눔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울역, 청년들의 자발적 섬김
서울역에서 활동하는 ‘스탠드그라운드’(대표 나도움 목사) 청년들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노숙인과 쪽방촌 노인들을 위한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물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위로와 기도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서울역과 근처 쪽방촌을 방문하며 간식과 함께 예배의 시간을 가지며 소외된 이웃들과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지난 2일에도 스탠드그라운드는 음료수와 초코파이, 카스테라 등의 간식을 준비해 서울역 근처 쪽방촌과 새꿈어린이공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날은 2시간 동안 추운 겨울철을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핫팩과 옷을 성경책과 함께 나눴다. 2021년에 시작된 사역은 친동생과 함께 노숙인 사역을 시작한 한 청년으로부터 비롯됐다. 사역은 두 청년을 포함해 점차 확대됐고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들이 사역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관계 맺기’다. 그저 음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 그러면서 한 노숙인은 성경책을 읽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고 사역은 신앙적 소망을 심어주는 일이 됐다. 최예현(21)씨는 “그들과의 대화와 교제를 통해 섬기는 삶의 진정성과 가치를 느꼈고 그들과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전했다. 3년째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홍현우(28)씨도 “노숙인 사역은 ‘기도를 해주고, 사랑을 나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서 오신 것처럼, 나 역시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는 사역”이라고 표현했다.
대전역, 따뜻한 한끼 나눔
대전역 근처에는 김기중 목사가 이끄는 ‘밤한끼’ 사역이 있다. 사역은 코로나19 대유행 중, 지원이 끊긴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됐고, 현재는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저녁과 둘째주 수요일 점심마다 국수와 치킨을 무료로 제공하는 체계적인 봉사활동으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 활동을 마치고 고향 대전으로 돌아와 ‘함께하는 교회’에서 구제사역파트 목회자로 섬기며 4년째 밤한끼 단체를 이끌고 있다. 사역팀은 겨울을 대비해 노숙인들에게 침낭과 매트리스, 내복 등을 나누고, 치아가 약한 노숙인들을 위한 잔치국수를 식사로 제공한다.
처음에는 잔치국수와 치킨 등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던 한 노숙인의 요청으로 예배를 시작하게 됐다. 예배에 함께하는 노숙인과 쪽방촌 노인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헌금과 특송으로 마음을 모았고 설교와 찬양 내내 노숙인들의 ‘아멘’이 끊이질 않는 은혜의 자리가 됐다. 김 목사는 “예배 후 주님의 만찬을 나누는 가운데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뤘다”며 “예배의 자리와 평화의 식탁이 겹쳐지는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머물러야 할 교회”라고 고백했다.
밤한끼 사역은 원칙적으로 인건비를 지출하지 않고 운영비를 최소화해 후원금 전액을 이웃을 위한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봉사자들도 대전 지역의 다양한 단체와 교회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되된다. 최근에는 기독문화예술팀 ‘팔로우온(Follow-on)’ 청년들이 참여해 찬양과 노래로 노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또한, 대전 동북교회(문병수 목사)는 국수를 제공할 공간을, 사업체 닭섬은 치킨을 후원하고, 열린부뚜막협동조합은 수요일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매달 물품을 후원해주는 새누리2교회(안진섭 목사)와 수제머핀과 빵을 가져오는 청년 등 교회와 개인들의 도움이 끊이질 않는다.
닭섬 사장인 맹주환(45)씨는 ”코로나때 장사가 안되고 빚이 쌓여가던 중 이렇게 힘든 시기에도 시작하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후원을 결심했다”며 “밤한끼 사역은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직접 만나 함께 먹고 대화할 수 있어 그 의미가 깊었다”고 전했다.
영등포역, 37년의 변함없는 섬김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광야교회(임명희 목사)는 37년 동안 변함없이 노숙인 사역을 이어오며 지역사회에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교회는 예배와 급식 사역을 영등포역 인근 교량 아래에서 시작했고 현재는 매일 점심과 저녁을 노숙인과 쪽방촌 노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밤 9시 이후에는 따뜻한 이불과 음식, 핫팩을 들고 야간 순찰을 돌며 노숙인들의 추운 밤을 돕고 있다.
광야교회의 사역은 1987년 6월, 임명희 목사가 청량리 역에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만난 노숙자들과의 약속에서 시작됐다. 그해 9월, 임 목사는 그들을 돕기 위해 서울의 한 거리로 향했고 거기서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그곳에는 다치거나 병든 상태의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고 대부분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임 목사는 하나님께 “이들을 어찌합니까”라고 눈물 흘려 기도했다. 그러자 그는 “이들은 다 강도만난 자들이다. 네가 여기서 이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노숙자 사역을 결심했다.
사역 초창기, 임 목사는 겨울철에 거리에서 자고 일어난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망하거나 연탄불을 쪼이다 죽는 비극적인 상황을 목격하며 야간 순찰을 시작했다. 그는 추운 겨울마다 노숙인들에게 잠바, 내복, 침낭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나눴다. 또한 매년 11월마다 노숙인들을 초청한 ‘광야인의 날 전도집회’를 개최했다. 올해 열린 제25회 광야인의 날에는 영등포공원 원형광장에서 1,200여 명이 모여 예배와 공연을 즐기고, 잠바와 식사를 나누는 온정의 시간을 가졌다. 행사 전, 임 목사는 3박 4일 동안 전국 기차역 주변의 노숙인들에게 행사 홍보를 했고, 이로 인해 행사 당일 새벽 3시부터 문산에서 온 노숙인들이 줄을 서며 기다리기도 했다.
또한 1992년에는 광야홈리스복지센터를 개소해 노숙인 현재 50~60명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쉼을 얻고 있다. 센터는 무료급식소의 역할 외에도 내적 치유와 상담, 취업 알선, 임대주택 알선, 가정 회복 지원 등 다양한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광야홈리스복지센터는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 세 끼 급식을 제공했으나, 현재는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점심과 80여명을 대상으로 한 저녁 급식으로 운영된다. 임 목사는 “급식소를 찾는 노숙인 수가 줄어든 이유는 복지 제도의 개선과 많은 노숙인들이 임대주택으로 자립하거나 복지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며 “현재 급식을 받는 사람들 중 절반은 노숙인, 나머지 절반은 독거노인과 쪽방촌 주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숙인 수는 코로나19 전후로 30%가량 줄었고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감소 중”이라며 “우리나라 복지 제도의 개선 덕분에 많은 노숙인들이 자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