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보여행 루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걷는 여성들이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영국 BBC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과 인터뷰한 9명의 여성은 지난 5년간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남성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그 중 몇몇은 목숨이 위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자위를 하거나 몸을 만지는 남성을 만났으며, 자신을 쫓아오는 남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원치 않는 스킨십과 음란한 발언을 방어해야 했고, 차를 세우고 자신에게 타라고 말하는 남성도 있었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이런 성희롱이 순례길의 외진 지역을 혼자 걷고 있을 때 주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산티아고를 걷는 여성들을 지원해온 온라인 포럼 ‘카미가스’의 설립자 로레나 가이보는 “순례길에는 성희롱이 만연해 있다”며 “매년 우리는 여성들이 이런 일을 경험한다는 보고를 받는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지난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은 사람은 44만6000명인데, 여성 비율이 53%였다. 길고 어려운 도보길이지만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혼자 걷는 여성도 많다.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마리 앨버트는 지난 2019년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435마일(약 700㎞)을 혼자 걸어가며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한 남자는 그녀에게 키스를 시도했고, 다른 남자는 그녀 앞에서 자위를 했다. 한 남성은 문자 메시지로 그녀를 괴롭혔고, 다른 남성은 거리에서 그녀를 따라오기도 했다. 성희롱을 가한 이들 중 일부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남성 여행자들이었다.
최근 몇 년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벌어진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에는 50세의 베네수엘라 여성이 스페인 북서부를 지나가던 중 두 명의 남성에게 납치돼 강간을 당한 사건이 보도됐다. 작년 스페인 경찰은 24세의 독일 순례자를 집으로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48세 남성을 체포했다.
특히 2015년 스페인 레온주의 한 시골 지역에서 미국 순례자 데니스 티엠이 실종된 사건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17년 법원은 티엠을 살해한 혐의로 스페인 남성에게 2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여성들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면서 스페인 정부는 2021년 다양한 언어의 순례자들에게 응급 서비스와 접촉하는 방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포럼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올 루츠’는 스페인 순례자들을 상대로 경찰에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비상앱을 다운로드할 것을 권고해 왔다. 포루투갈 경찰은 5월부터 10월까지 순례 코스에 순찰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