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22) 섬 전도자의 헌신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쓰다

입력 2024-11-11 10:08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저희 섬마을 교회 주일예배는 11시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9시에 오셔서 기도로 준비하며 예배를 기다리시는 어른이 있습니다. 김상유 집사님이십니다. 집사님은 80 평생을 사시면서 젊어서는 어부 일을, 노후에는 농부의 삶을 사십니다.

누구나 그렇듯 집사님께서도 살아오면서 자랑거리도 있지만 부끄러운 기억이 더 많다고 늘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 집안의 독자로 태어나 여자 형제들보다 부모님과 조부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아온 것이 오히려 더 가부장적이며 이기적인 성격이 되어, 특히 부인되시는 권사님을 많이 울렸다고 고백하십니다.

어부 중에 어부였던 집사님은 젊은 시절 술을 좋아했고 다른 이들이 작은 2홉들이 소주를 마실 때 집사님은 언제나 됫병이라 불리는 큰 술병을 한 사발씩 마시고 술주정하면서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부인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보통 어부들이 하던 대로 거리낌 없이 행하고 살아온 지난날을 이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후회하고 회개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도통 미안함을 몰랐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과수원과 텃밭에서 황소 같이 일하시는 집사님은 옛날의 거친 어부 모습은 없고 순한 집사님의 본분을 다합니다.

흉을 본다면 걸핏하면 밥상을 뒤엎고 큰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부인을 때렸다고 합니다. 섬 남자들 대다수가 그렇게 살았다 합니다. 집사님은 교회가 없던 우리 마을에 예배당이 완공됐을 때 교회 오시라는 첫 마디에 승낙하시고 순서대로 세례를 받고 명예 집사님으로 섬 목회를 시작한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저희 마을에서 5㎞ 거리 선창리 마을에 45년 전 초등학교 김승빈 선생님이 부임하셨는데 그분은 훌륭한 교사이면서 열정을 가진 전도자였습니다. 특히 아이들 전도에 사명을 가지고 옛날 슬라이드 영사기를 갖고 다니며 눈보라 치는 겨울밤에 2시간 거리의 위험한 밤길을 걸어 우리 마을 가난한 가정에 어린 두 형제를 마을회관에 불러놓고 영사기를 보여주면서 전도를 열심히 했답니다.
국화꽃 앞에서 다정한 김 집사님 부부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호랑이 같은 남편이지만 지금은 전라도 말로 권사님 앞에서 딸싹도 못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스승이셨습니다. 사비를 털어 전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준비해 어부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복음을 심어주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신 귀한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 섬마을 아이들은 빨리 커서 엔진 달린 작은 통통선의 선장이 되어 폼잡고 살아보는 꿈이 전부였습니다. 아이들은 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해 여자의 경우는 쌀 한 말 못 먹고 시집가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김 선생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 두 아이가 자라서 큰형은 대기업 부장이면서 안수집사님으로, 동생은 신학을 공부해 목포에서 훌륭하게 목회하는 담임목사님이 되셨는데 그 두 형제가 바로 김상유 집사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는 마치 신안군 섬마을에서 문준경 전도사님이 아이들을 전도하시고 순교하셨는데 그때 전도한 아이들이 훌륭한 목사님이 되셔서 한국교회 지도자가 되신 것과 같았습니다. 또 바울 사도께서 전도한 어린 디모데가 훗날 에베소 지역 총감독이 됐던 것처럼 복음은 왜 이렇게 신기하고 멋있는 역사를 이루는지요. 두 아들은 지금도 명절 때면 부모님 집에 와 제일 먼저 교회를 찾아 저를 위로해 줍니다. 그 형제들을 바라보는 저는 감격해 다시금 가슴에 전도의 불을 붙이곤 합니다.

두 형제는 먼저 어머님을 전도해 권사님이 되셨고 두 아들이 본이 되는 삶을 살아왔기에 어부인 아버지 김 집사님이 집사가 됐습니다. 이는 바로 평신도로서 낙도선교를 시작하신 김승빈 선생님과 오늘날 낙도에서 복음의 불을 밝히는 수많은 주의 종들이 함께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고 가는 현장이 이곳에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