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인 바이블] ⑩에큐메니컬 하나님의 나라 이해가 갖는 한계점

입력 2024-11-06 09:44 수정 2024-11-06 10:52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로 핵심 본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복지, 정의가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 가운데 이런 면이 일정 부분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고 해서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어떤 국가나 사회가 정의롭고 복지가 잘 이루어져도 하나님께 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것을 하나님 나라로 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제자들에게 시작된 그 나라의 증인이 될 것을 명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교 명령이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WCC) 에큐메니컬 진영은 이 세계를 ‘지배와 종속’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불의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구조악 제거를 선교 목표로 삼는다. 이것이 이뤄지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인 것으로 착각한다. 이에 대해 신학자 칼 브라텐은 서독의 엘리트 그룹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사회주의 이상을 낭만적으로 수용하면서 소련의 심각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기독교 좌파는 마르크스주의 표어를 외치고 있다”며 “그들이 이끌어온 분명한 결과에 대해서는 눈이 먼 것 같다”라고 비평한다. WCC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 목표는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고보다는 세계 문제 자체와 그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구조악 척결을 통해 세계를 변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관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는 주로 거대담론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거대담론적인 목표는 대부분 교회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이런 것들에 대한 예언자적 소리를 외칠 수는 있지만 교회가 그것을 선교의 목표로 설정해 직접 나서 실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회는 이런 분야의 전문 기관이 아니다. 아울러 세상의 그 어떤 기구도 정의 평화 환경 문제 등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씨름할 문제이지 완벽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교회가 이런 문제 해결을 선교의 목표로 설정하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큰 목표로 정작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인 전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문제 해결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로 볼 수 없다. 에큐메니컬 진영이 관심 두는 거대담론의 문제가 해결돼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샬롬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임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곳 사람들이 하나님께 아무런 관심도 없고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만을 위해서 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이익과 쾌락에만 관심을 두는 사회는 아무리 복지가 발달하고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 없는 하나님 나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나라를 이루려는 것은 예수께서 명하신 선교 목표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예수께서 명하신 선교 목표와 들어맞는 선교 수행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승오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과 미국 풀러신학대 선교대학원을 마쳤다. 필리핀 선교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과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