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한화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으로 불리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군의 신뢰를 극대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 육군이 추진하고 있는 자주포 현대화 사업에 K9 자주포를 납품하는 등 국내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할 경우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 저변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일 전 한미연합사령관 3명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을 방문해 K9 자주포 생산라인 등을 둘러봤다고 5일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3사업장을 찾은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K9 자주포 생산라인 등을 둘러본 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기체계가 미군에 필요한 전력이고 전력화가 된다면 한·미 방산협력을 통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K9 자주포에 대한 미군의 신뢰도가 높아져 미 육군 납품도 가시권에 들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방산국이자 가장 큰 방산 시장이다. 올해 미국의 국방 예산은 8860억 달러(1219조원)다. 2024년 한국 정부 예산(656조3000억원)의 약 2배에 달한다. 전 세계 국방비 중 40%를 미국이 차지할 정도다. 록히드 마틴·보잉·노스롭그루먼등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도 모두 미국 기업이다. 인공지능(AI), 드론, 사이버 보안, 극초음속 미사일 등 최신 방위 시스템 또한 미국이 가장 앞서나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방산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이 높은 만큼 기업이 미국 진출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벽도 높다. 가장 큰 장애물은 미국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터라 방산무기를 수입할 때 국가와 기업에 대한 신뢰성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 기업과 국가를 믿을 수 있을지 다방면으로 평가한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여러 법적 절차를 해결하더라도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없으면 미국에 방산품 수출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참전 장교 출신 한인 2세 제이슨 박 전 미 버지니아주 보훈부 부장관을 대외협력 시니어 디렉터로 채용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2012년 도보 순찰 도중 탈레반이 설치한 급조폭발물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미 육군 대위로 전역하며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전역 이후에는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MBA를 마치고 보잉의 보훈 총괄, 버지니아주 보훈국방부 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한다. 인수에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참여했다. 한화그룹 측은 “미국 함정 시장 진입 시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를 위한 최적 사업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에는 한화오션이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를 체결했다.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운영) 사업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서다. 또 지난 8월 말에는 MRO 사업의 첫 프로젝트로 월리 쉬라 함의 창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MRO 사업 수행을 통해 미 함정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한화오션이 보유한 기술력과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안을 통해 미 해군 전력 증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