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은 채 잔뜩 웅크리고 손을 모은 세 사람의 자태는 처량하다 못해 처절하다. 흐느끼듯 숙인 고개도, 절규하듯 들어 올린 얼굴에서도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가슴 치는 통곡이 들리는 듯하다. 이 모습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세 사람의 형상이 잔뜩 구겨진 닥종이로 거칠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5일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서 만난 장승원(61) 작가는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삶 가운데 겪는 고난은 매끈하고 평평하지 않다. 우글쭈글한 고통 속에서도 한 줄기 소망의 빛을 품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희망”이라고 했다.
‘그림으로 기도하는 작가’로 불리는 장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기도’가 남는다.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지만 그 한 단어가 40여년간 캔버스에 수놓아지기까지는 성경 속 광야 생활과 같은 역경들이 있었다.
“1981년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찬란한 청춘이 펼쳐질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어머니의 병환, 아버지에게 들이닥친 뇌졸중 등이 휘몰아치며 암흑 같은 20~30대를 보내야 했지요.”
그의 삶을 붙든 건 기도였다. 장 작가는 “하나님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한 조각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극한의 고난이 낳은 간절함의 기도가 슬픔을 기쁨으로, 눈물을 감사로 변하게 한 동력”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광장시장에서 한복 포목점을 하시던 어머니와 유년시절에 행복하게 나비며 꽃이며 오려붙이던 게 떠올라서 스케치해 둔 그림에 종이 콜라주 기법을 접목한 게 입체감을 더한 작품을 시작한 계기”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들은 떠오르는 형상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닥종이 위에 혼합재료를 더해 구기고 으깬 뒤 풀로 형태를 잡아 붙이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여기에 드로잉이 얹어지며 뒤틀리고 우글쭈글한 질감과 함께 고난의 상처와 흔적을 표현해 낸다.
최근 작품에는 고통과 탄식의 과정을 통과해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표현돼 있다. 장 작가는 “갤러리를 찾는 분들마다 서로 다른 작품 앞에서 뭉클함을 느끼는데 이는 현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의 과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며 “청년 관객의 경우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신음하듯 웅크려있는 작품 앞에 발길을 멈춘다”고 전했다.
장 작가는 부평 큰숲교회(황석산 목사)의 사모이자 미술치료사로 지역 내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역할도 한다. 매주 어린이 성도들을 만나는 주일학교 교실이 그의 작업실이 돼준다. 오후 8시, 작업 도구들을 펼쳐두고 찬양을 틀고 묵상하며 작품을 위한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게 작가로서의 루틴이다. 그렇게 오전 1~2시까지 이어지는 작품 활동이 그에게는 또 다른 기도가 된다. 그의 작가 노트 말미엔 디모데전서 2장 1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삶의 서사 가운데 여러 가지 기도 형태가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라며 말했다.
“기도가 탄원이 될 수도, 간청이나 울부짖음, 도고가 될 수도 있어요. 모두 제 모습이고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해요. 그 가장 밑바닥에서 희망의 빛을 찾는 겁니다. ‘잘 되게 하실 거야. 나를 살려주실 거야. 나를 이 고통에서 멈춰주실 거야’. 그림도 기다림이에요. 간절한 사람이 그리게 되고 글을 쓰게 되고 노래를 하게 되는 겁니다.”
장 작가의 작품 40여점을 만날 수 있는 9번째 개인전 ‘기도하는 사람들’은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그는 내년 3월 ‘하나님이 주시는 쉼과 안식’을 주제로 한 수채화 작품으로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