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매끈하지 않아요” 우글쭈글한 기도, 희망을 긷다

입력 2024-11-05 14:31 수정 2024-11-05 17:31
장승원 작가의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신석현 포토그래퍼

무릎을 꿇은 채 잔뜩 웅크리고 손을 모은 세 사람의 자태는 처량하다 못해 처절하다. 흐느끼듯 숙인 고개도, 절규하듯 들어 올린 얼굴에서도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가슴 치는 통곡이 들리는 듯하다. 이 모습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세 사람의 형상이 잔뜩 구겨진 닥종이로 거칠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5일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서 만난 장승원(61) 작가는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삶 가운데 겪는 고난은 매끈하고 평평하지 않다. 우글쭈글한 고통 속에서도 한 줄기 소망의 빛을 품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희망”이라고 했다.
장승원 작가의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림으로 기도하는 작가’로 불리는 장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기도’가 남는다.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지만 그 한 단어가 40여년간 캔버스에 수놓아지기까지는 성경 속 광야 생활과 같은 역경들이 있었다.

“1981년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찬란한 청춘이 펼쳐질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어머니의 병환, 아버지에게 들이닥친 뇌졸중 등이 휘몰아치며 암흑 같은 20~30대를 보내야 했지요.”
장승원 작가가 5일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 전시된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의 삶을 붙든 건 기도였다. 장 작가는 “하나님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한 조각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극한의 고난이 낳은 간절함의 기도가 슬픔을 기쁨으로, 눈물을 감사로 변하게 한 동력”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광장시장에서 한복 포목점을 하시던 어머니와 유년시절에 행복하게 나비며 꽃이며 오려붙이던 게 떠올라서 스케치해 둔 그림에 종이 콜라주 기법을 접목한 게 입체감을 더한 작품을 시작한 계기”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들은 떠오르는 형상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닥종이 위에 혼합재료를 더해 구기고 으깬 뒤 풀로 형태를 잡아 붙이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여기에 드로잉이 얹어지며 뒤틀리고 우글쭈글한 질감과 함께 고난의 상처와 흔적을 표현해 낸다.
장승원 작가의 작품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신석현 포토그래퍼

최근 작품에는 고통과 탄식의 과정을 통과해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표현돼 있다. 장 작가는 “갤러리를 찾는 분들마다 서로 다른 작품 앞에서 뭉클함을 느끼는데 이는 현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의 과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며 “청년 관객의 경우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신음하듯 웅크려있는 작품 앞에 발길을 멈춘다”고 전했다.

장 작가는 부평 큰숲교회(황석산 목사)의 사모이자 미술치료사로 지역 내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역할도 한다. 매주 어린이 성도들을 만나는 주일학교 교실이 그의 작업실이 돼준다. 오후 8시, 작업 도구들을 펼쳐두고 찬양을 틀고 묵상하며 작품을 위한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게 작가로서의 루틴이다. 그렇게 오전 1~2시까지 이어지는 작품 활동이 그에게는 또 다른 기도가 된다. 그의 작가 노트 말미엔 디모데전서 2장 1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삶의 서사 가운데 여러 가지 기도 형태가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라며 말했다.

“기도가 탄원이 될 수도, 간청이나 울부짖음, 도고가 될 수도 있어요. 모두 제 모습이고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해요. 그 가장 밑바닥에서 희망의 빛을 찾는 겁니다. ‘잘 되게 하실 거야. 나를 살려주실 거야. 나를 이 고통에서 멈춰주실 거야’. 그림도 기다림이에요. 간절한 사람이 그리게 되고 글을 쓰게 되고 노래를 하게 되는 겁니다.”

장 작가의 작품 40여점을 만날 수 있는 9번째 개인전 ‘기도하는 사람들’은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그는 내년 3월 ‘하나님이 주시는 쉼과 안식’을 주제로 한 수채화 작품으로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