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클리닉 앞에서 조용히 기도한 게 불법?’ 英 ‘프로라이프 운동’ 빨간불

입력 2024-11-05 11:40 수정 2024-11-05 17:43
영국의 한 진료소. 로이터연합

영국 ‘프로라이프’(낙태 반대) 운동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말부터 시행된 일명 ‘완충구역법’으로 인해 생명 수호를 위해 기도한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프로라이프 단체는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며 강하게 우려했다.

5일 영국 현지 언론과 프로라이프 단체에 따르면 최근 임신 중절(낙태) 병원 주변에 ‘완충 구역’을 설정한 새로운 법률이 발효됐다.

지난해 영국 의회는 ‘공공질서법 2023’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안전 접근 구역’을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낙태 클리닉 시설의 150m 이내에서 낙태 반대를 암시하는 전단 배포, 기도 등을 포함한 시위 활동이 모두 금지한 것을 골자로 한다. 낙태 서비스를 받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방해하는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국 검찰청(CPS)은 완충 지대 내에서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형사 범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발표했다. 다만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고 해당 행위가 법에 따라 항의로 정의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완충구역법을 위반하면 최대 6개월 징역형과 무제한 벌금형을 받는다. 법이 시행됐지만, 임신중절 시설 인근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는 방식’의 시위가 단속 대상인지는 여전히 논란 가운데 있다. 이 법률로 인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잠재적 침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도 일고 있다.

그동안 프로라이프 운동을 펼쳐온 영국 관계자들은 이 법안이 가져올 부작용에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영국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 UK)의 법률 고문을 맡은 제레미아 이군누볼레씨는 “이 법은 너무 모호하게 작성됐기 때문에 영국의 특정 거리에서 평화롭고 합의에 따른 대화나 심지어 조용한 생각조차 불법이 될 수 있다”며 “몇 분 동안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멈췄던 애덤 스미스코너가 기소된 사건을 봤다”고 비판했다.

군 참전 용사이자 생명권 옹호 시위자인 스미스코너씨는 최근 완충 지대 내에서 묵묵히 기도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낙태 병원 주변에서 금지령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2년 기한의 조건부 석방과 9000파운드(약 1606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는 ADF UK의 지원을 받아 유죄 판결에 항소했다. 스미스코너씨는 “정부가 생각과 기도 내용까지 결정하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그는 “이 나라가 세워진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육군 예비군에서 20년간 복무했다”며 “영국에서 사상 범죄가 기소될 정도로 우리의 자유가 침식되는 것을 보는 게 매우 걱정스럽다”고 개탄했다.

영국 태아보호협회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수치스러운 날이자 영국 역사상 소름 돋는 순간”이라고 비판했다. ADF UK는 정부 관리들에게 전달될 청원서를 작성했으며 현재까지 6만여개의 서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청원서는 당국에 해당 법률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 법률이 ‘사상 범죄의 창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