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전’…전기차 캐즘에도 투자 못 놓는 자동차업계

입력 2024-11-04 16:59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2년부터 시동을 걸던 전기차 캐즘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위축된 형국이지만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여전히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매진한다. ‘어차피 대세는 전기차’라는 관점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4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배터리 전기차(BEV) 수요 둔화 속 완성차 사별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은 2021년 전년 대비 115.3%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판매량 자체는 지난해 985만대로 최고치를 찍었으나, 성장률은 전년 대비 26.6%로 2022년(62.6%)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산이 원활하지 않던 2019~2020년 성장률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단기간에 반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 않는다.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고가인 탓에 경제 상황과 보조금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각국의 보조금 정책 축소로 가격 부담, 인프라 부족 등이 전기차 캐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전동화 전환을 진행하며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다. 얼마간 속도 조절은 하겠으나 궁극적으로 전기차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등 단호하게 탄소중립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게 크다. 유럽 외 주요국들도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목표 시점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겠으나, 시기가 늦춰져도 전동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점이다.

전망치도 나왔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202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17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듬해인 2026년에는 처음으로 2000만대 돌파, 2028년 3100만대, 2030년 4100만대, 2032년 5100만대, 2034년 6600만대, 2035년 720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관측했다. 성장률이 둔화해도 판매량이 증가하며 전기차 시장이 안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공세도 전기차 R&D와 투자를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의 내수 겨기 둔화 등으로 내수 판매가 둔화하자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해외 현지 직·간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19만대의 전기차를 수출했으나 2021년 50만대, 2022년 99만대, 지난해 158만대로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주요국들은 중국산 전기차의 급격한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산업 보호 정책을 강화하자, 중국은 신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신흥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전동화에 미온적이었던 일본 완성차기업들이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경쟁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토요타는 북미시장을 겨냥해 투자를 확대하고, 혼다는 중국 시장 현지 전략 모델을 출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런 환경에서 현대자동차·기아 또한 전기차 확대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진행된 ‘2024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 전기차 판매 200만대’라는 장기 목표를 다시금 밝혔다. 올해부터 2033년까지 120조5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를 포함한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로 확장하고 에너지 사업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 유럽 완성차기업들도 투자를 확대하고 전기차 생산 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미국의 완성차기업들은 전기차 관련 투자를 축소하거나 생산을 연기하며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전기차 전환 전략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작성한 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이지형 선임연구원은 “전기차 전환은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이라며 “기업별 접근법이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된다. 내수 시장 한계 극복과 신산업 선점을 위한 수출 전략 등이 경쟁 구도를 바꿀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