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그 남자의 ‘소명’, 14년간 돕는 배필 된 그 여자의 ‘사랑’

입력 2024-11-04 14:47
김신웅(왼쪽) 너나들이교회 목사와 김혜정 사모가 4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 같던 아기가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생후 16개월 즈음이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주저앉기도 하고 손을 쓰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넘어지기 일쑤였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뇌성마비 같다’는 말만 할 뿐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증세는 점차 심해져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됐지만 대학원까지 진학해 신학을 전공했다. 29살이 돼서야 찾은 병명은 척수성 근위축(SMA)으로 근육이 점차 굳어가는 희귀 유전 질환이었다. 하지만 신체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소명을 이뤄냈다. 교회 개척 1주년을 맞은 김신웅(42) 너나들이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 목사 이야기다. 그 곁에는 14년간 그의 손과 발이 돼준 아내 김혜정(41) 사모가 있었다.

4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목사는 아픈 지난 시절을 이야기할 때도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고 유쾌한 말솜씨를 뽐냈다. 신대원 시절 ‘이 몸으로 사회에 나가면 쓰레기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도 담담했던 그가 단 한 번 말문이 막힌 것은 아내 이야기를 하며 울컥할 때였다.

“아내에 대해서는 고마움이나 사랑 같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가 축복을 크게 받았죠. 제가 어디에 있든 온종일 저와 함께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에 이런 여자가 어디 있을까요.”

김신웅 목사가 지난달 10일 인천 서구 너나들이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고 있다. 너나들이교회 제공


김 사모는 김 목사가 청년 사역을 하던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 사이로 처음 만났다. 수련회에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뒤 김 목사가 앞으로 하게 될 목회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 이 마음을 다른 목사님께 고백했을 때 일시적인 생각일 수도 있으니 충분히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당시 남편을 볼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 귀하게 느껴졌고 어린 시절 상처로 사람을 믿지 못하던 제가 사람에 대한 믿음까지 생겼죠.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도 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는데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김 사모)

2010년 결혼식을 올린 후 김 목사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할 때까지는 4~5년의 세월이 걸렸다. 결혼 전 김 사모는 남편을 충분히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누군가의 옷을 입혀준 적도, 밥을 먹여준 적도, 몸을 닦아준 적도 없었는데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처음엔 남편을 옮겨주다 전동 휠체어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중심을 못 잡아 남편 머리가 깨질 뻔한 적도 있어요. 가장 힘든 건 밤에 남편 체위를 계속 바꿔주느라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거예요. 2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위치를 바꿔줘야 해요. 하지만 남편이 욕창 한 번 생긴 적이 없어 병원에서 보호를 잘했다고 칭찬을 받으면 기쁘죠. 제 덕분에 남편이 한 영혼을 살리는 사역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요. 무엇보다 남편과 같이 있으면 항상 웃게 되고 행복해요.”(김 사모)

김신웅 목사를 비롯한 너나들이교회 성도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너나들이교회 제공


모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던 김 목사는 지난해 11월 인천에 너나들이교회를 개척했다. 장애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났듯이 이 땅의 청년들을 세우고 싶은 소명이 있었다. 주중 예배가 없는 대신 주일 예배를 2시간이 넘도록 뜨겁게 드리고 성도들이 매일 말씀을 묵상할 수 있게 유튜브를 통해 큐티 가이드를 배포하고 있다.

김 목사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마우스를 움직여가며 설교를 준비한다. 모든 책은 스캔해 노트북으로 읽고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대여섯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는 불편하고 힘들다는 이야기보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태어나 문제없이 설교를 할 수 있다”며 감사를 먼저 고백했다.

김 목사는 너나들이교회가 다음세대 사역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성도 40여명 중에 신대원생이 4명이나 있다. 이제는 그의 신체 일부와 다름없는 김 사모와 함께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다.

“다음세대가 다시 부흥하려면 그들을 섬기고 위로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역자들이 마음껏 훈련받고 성장하는 교회, 그리고 교회 이름처럼 성도들이 ‘너니 내니 하며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가족 같고 친구 같은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김 목사)

글·사진=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