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청소년과 청년들이 채용에 합격하고도 통근비, 주거비, 옷값 등 일을 시작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10·20대 중 3분의 1은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젊은이들은 실업→정신건강 악화→구직·근로 능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다.
어렵게 면접 통과하고도 돈 없어 입사 포기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은 영국 자선단체 ‘프린스 트러스트’가 발간한 2024년도 연례 보고서를 인용해 “Z세대는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 채용 담당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마침내 일을 맡게 되고도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프린스 트러스트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왕세자 시절 설립한 청년·청소년 지원 단체다. 찰스 3세가 지난해 국왕으로 즉위한 만큼 지난달 킹스 트러스트로 이름을 바꿨다. 이 단체는 매년 네트웨스트 은행과 함께 ‘유스 인덱스’라는 제목의 실태 조사 보고서를 내고 있다. 2024년도 보고서는 올해 초 발간됐다.
프린스 트러스가 지난해 11월 23일~12월 14일 16~25세 영국인 22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실업 상태인 청년 중 5%가 주거비, 교통비, 유니폼 비용 등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일자리를 거절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교육이나 취업,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니트(NEET)’ 청소년·청년은 이 비율이 10%로 2배였다. 경제 취약계층 역시 9%로 10명 중 1명에 달했다.
프린스 트러스트는 보고서에서 “생활비 상승이 젊은이에게 미래에 대한 절망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해 그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직업적 포부를 억누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Z세대 행복감·자신감 바닥… 젊은 여성, 더 불안
이번 실태는 조사 시작 후 1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도와 재정적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단체는 설명했다. 절반에 가까운 49%가 “생활비 상승이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응답자 3명 중 1명이 넘는 34%는 생활비 상승으로 인한 돈 걱정 때문에 정신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했다. 비슷한 33%는 돈에 대한 생각이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응답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젊은이들의 직업적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5명 중 1명(18%)이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일찍 마칠 계획이라고 답했다. 4분의 1 정도(24%)는 원하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비율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청년 사이에서 34%로 급증했다.
같은 연령대에서도 여성이 받는 압박은 더 컸다. 여성 응답자는 60%가 생활비 상승으로 재정적 안정을 이루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령대 남성 응답자 비율인 45%와 비교해 크게 높다.
자신의 미래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비율 역시 여성이 42%로 남성(37%)보다 높았다. 항상 또는 자주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여성은 70%였다. 남성은 이 비율이 54%였다.
프린스 트러스트는 보고서에서 “젊은 여성은 젊은 남성보다 낮은 자신감, 정신건강 문제, 생활비 걱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다”며 “많은 젊은 여성이 재정적 안정이 항상 자신에게서 멀리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해설했다.
40%, 정신건강에 문제… 18%, 구직 시도도 못해
단체는 현재 경제 상황이 청년층의 ‘자신감, 웰빙, 미래에 대한 포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배경을 가진 청년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프린스 트러스트 조나단 타운젠드 최고경영자(CEO)는 “정신건강 악화와 고용 문제의 악순환이 이 세대를 덮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즉각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포천은 전했다.
포천은 “실업 상태의 젊은이들은 ‘실업이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정신 건강은 일할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프린스 트러스트 설문 응답자 40%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3분의 1은 이 때문에 경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5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학교나 직장을 결석한 적이 있고, 18%는 구직 신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부담을 느꼈다. 12%는 면접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배경을 가진 이들은 10명 중 1명이 올해 정신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천은 “많은 젊은 근로자에게 정신건강은 이미 직장 생활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별도 연구에 따르면 젊은 근로자 상당수가 출근을 했더라도 매주 하루 분량에 해당하는 업무를 실질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부연했다.
“젊은이들 ‘목표 달성 의지’ 있어… 고용주가 도와야”
프린스 트러스트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고용주가 자신들을 도와줄 방안을 제시했다. 3분의 1은 업무 경험 확보, 이력서 작성 방법과 면접에서의 자기표현 방법, 직무별 기술을 쌓는 훈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타운젠드 CEO는 포천에 “대다수 젊은이가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 환경에서 직면하는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과 안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