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곁으로 나아가다가 죽는 순간에 비로소 ‘이제야 용서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오종혁)
“고난도 어느 정도여야 참아질텐데 모든 걸 다 빼앗겼거든요. 용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요.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내가 용서를 받은 거구나’를 깨닫고 난 뒤에야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가능해진 게 용서였던 거예요.”(선예)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 대기실에서 만난 두 배우에게서는 생의 깊은 질곡 끝에서 길어 올린 참회록 같은 고백이 흘렀다. 고백의 바탕이 된 배역은 바울 그리고 아니스타. 지난 2일부터 무대에 오른 뮤지컬 ‘바울과 나’(연출 이석준)의 두 주인공이다.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그룹 클릭비와 원더걸스의 메인보컬에서 뮤지컬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고 있는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용서’의 메시지를 뿜어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반전의 아이콘 바울, 상상 속 아니스타를 만나다
성경 속 가장 극적인 반전의 아이콘인 바울 역을 소화하는 것은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표현하는 것과 같다. 오종혁은 “1인 2역이라는 접근보다는 ‘사울이 있어야 바울이 있다’는 관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행해왔던 모든 죄와 악함을 되뇌며 낮아졌을 때 비로소 부서질 듯 자기 몸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오롯이 복음 전하는 것에 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데반 대제사장 누가 헤롯 등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배역에 비해 창작된 캐릭터인 아니스타는 성경 속 레퍼런스(참고 자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예는 아니스타가 지닌 배역으로서의 특성을 표현의 다양성과 확장성으로 풀어냈다. 그는 “캐릭터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인물이 아니다보니 같은 대사라도 톤과 방식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표현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며 웃었다.
분노 무관심으로 점철된 시대에 ‘용서’를 외치다
극중 아니스타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간 자의 최후가 죽음이라는 사실에 깊은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다. 이해와 존중보다는 혐오와 배제, 무관심으로 둘러싸인 이 시대 크리스천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바울과 나’가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용서 화해 자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선예는 “관객 스스로 아니스타를 자신에게 투영해볼 수 있길 바란다”며 비기독교인 관객의 마음에도 새겨지길 바라는 한 가지에 대한 고백을 전했다.
“오디션에서 기적적으로 뽑혔을 때, 연습생 중에 가장 먼저 데뷔를 했을 때, 원더걸스로 엄청난 사랑을 받을 때도 전 잘 알고 있었어요. 내 힘, 내 실력만으로 이뤄낸 게 아니라는 걸요. 비기독교인 관객들이 아니스타를 보면서 ‘저렇게 마음먹을 수 있는 원동력,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뭘까’라고 마음에 호기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레미제라블’ 못지않은 웅장한 무대 주목
기독 창작뮤지컬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인 만큼 준비과정에서 배우들이 경험하는 신앙적 공감대도 남다르다. 오종혁은 “배우들의 소통 창구 중 하나인 단체 채팅방에서 감사 제목을 공유하기도 하고 연습에 앞서 돌아가며 기도하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작품을 위해 모인 이 공동체가 ‘참 좋은 교회’처럼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선예는 작품 속 가장 큰 울림을 줬던 곡으로 모든 배우들이 부르는 피날레 합창곡 ‘죽음에서 일어나다’를 꼽았다. 객석에 앉아 보면 그 선택에 공감이 간다. 이 시대를 상처와 아픔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듯 “눈앞에선 폭풍우 불지만 그것이 끝이 아냐”라는 외침이 가슴을 때리기 때문이다. ‘바울과 나’는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