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104) 할아버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피해 배상을 수용한데 대해 장남이 “아버지는 정상적인 의사를 표할 수 없는 상태”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할아버지의 장남 이창환씨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노환과 섬망증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정상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제3자 변제에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강제동원지원재단에 했다는 것이 아들로서 납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는 “형제 일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접촉해 수령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반대 입장이었다”며 “오늘 형제들을 설득하려 광주로 갈 예정이었는데 뉴스를 통해 (부친이) 판결금도 지급받았다는 내용을 갑작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형제들에게 현재 상황이 왜,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누가 서명한 것이고 누가 돈을 수령했는지를 확인할 것”이라며 “이를 취소할 수 있는지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6년 전 오늘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날 아버지는 ‘10월 30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쁘고 슬픈 날이다. 전원합의체 승소 판결을 받고 너무 기뻤지만 고인이 된 동지들과 함께 기뻐하지 못해 나는 너무 슬프다’고 했다”며 “아버지가 쌓아오신 과정과 기록을 지켜본 아들로서 그 뜻을 끝까지 기리고 지키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윤석열정부는 위법적 방식에 의한 제3자 변제 판결금 지급 강행을 당장 멈추라”며 “정부는 법원의 공탁 불수리 처분으로 사면초가에 빠지자 탈법적 수단을 통해 판결금 지급을 강요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단체는 “생존 피해자의 법률적 행사는 오직 당사자와 이 사건 법률대리인만이 할 수 있다”며 “정부는 고령 피해자들의 인지능력이 부족한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이를 이용해 위법적 수단을 통해 제3자 변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할아버지 측은 이날 오전 재단으로부터 대법원의 손해배상 승소판결에 대한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수령했다. 지난 23일 양금덕(95) 할머니가 해법을 수용한 지 일주일 만이다. 2018년 두 차례의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원고 총 15명 중 11명의 피해자와 유족이 이 방안을 수용했으나,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는 최근까지도 이 해법에 반대하며 배상금 수령을 거부해왔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