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G는 중학교 때 심하게 정서적으로 방황했다. 술, 담배 등 갖은 비행을 저질렀다. 어울리던 친구들과 갈등을 겪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공부를 해 보려 하였지만, 잘 되지를 않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면서 스스로 ‘망했다’ ‘한심하다’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자책하며 점점 우울해졌다.
G의 부모는 예전부터 부부 갈등이 심했다. 겉보기에는 반듯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부모는 격하게 싸우는 적도 많았다. 부모는 자신들의 문제 때문에 G에게는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다. 때로는 딸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G에게 화풀이하며 정서적인 학대를 하였다.
부모에게 방임되고 정서적인 학대를 받아온 G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다. ‘나는 뭔가를 하려고 하면 늘 망쳐버리지’ ‘나는 너무 형편없어’ ‘혹독하게 대하는 게 마땅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에게 인색했다. 만일 ‘나를 혹독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나태해지고 게을러 질 거야’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인 자기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술, 담배, 비행 등을 하며 현실에서 도피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 학대적인 생각과 싸워서 이런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은 ‘NO’이다. 가능한 일은 이런 비판적인 생각을 느슨하게 하고, 이 생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거다.
자신에게 이렇게 혹독하고 비판적인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이를 이용해서 관점을 바꾸어 보았다. 그녀에게 이렇게 질문해 본다. “여기에 작은 방을 상상해 보자. 네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S가 그곳에 있다. 그녀는 과거 중학생 시절에 온갖 비행을 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에 후회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망했다’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또는 “너는 그녀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주겠니”라고.
그러자 G는 자신에게 했던 것과 달리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야. 내가 도와줄게. 내가 안아줄 게”라고 말했다. G는 비슷한 상황에 대해 자신에게는 ‘망했다’ ‘한심하다’‘희망이 없어’라는 비판하는 말로 자신을 대했던 것을 기억하며,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이리도 다르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자신을 호되게 야단치고 비난하는 게 필요할까”라고 질문하니 “아니요. 단지 그땐 너무 힘들어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처한 환경 즉 가족, 사회로부터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배운다.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이해와 공감 속에 자란 이들은 스스로도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다. 하지만 혹독하게 비판을 받거나 조언만 받고 자란 사람들은(물론 더 잘하라는 채찍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혹독하고 비판적이다. 자신을 대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환경에서 학습한 대로 만들어진다. 때로는 잘못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지, 아니면 절망하여 숨어들기만 할지를 판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목소리를 너무 움켜쥐고 끌려간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를 판단하기보다는 그것에 지배당하기가 쉽다. 그 목소리를 느슨하게 관찰해보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