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간 언약 관계(막 10:9)가 쉽게 깨질 수 있는 가벼운 관계로 치부되고 있다. 이혼으로 상처 입은 가정은 교회 공동체에서도 상처받기 일쑤다. 매년 평균 9만쌍의 부부가 갈라지는 세태 속에서 이혼 가정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사역과제 등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이혼 준비하는 워킹맘의 고충
결혼 8년 차에 들어선 한유리(가명·40)씨는 자녀 둘을 둔 전문직 워킹맘이다. 그는 올 초부터 우울증과 신경 쇠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연애한 지 1년 만에 결혼한 그는 신혼 초부터 배우자와의 불화로 속이 새까맣게 탔다고 했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씨는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이혼할 생각”이라며 “그래서 두 딸을 키우며 일하는 게 체력적·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버티고 있다. 이혼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 된 상태여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한씨는 부부싸움의 단골 소재가 시댁 문제와 남편의 알코올 중독 문제라고 털어놨다. 그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시어머니가 자녀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셨는데 이제는 제가 (정신적으로) 살기 위해 연락을 못 하고 있다”며 “이 일로 첫째 역시 할머니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모태신앙인 그는 친정 부모가 반대한 결혼을 강행했기 때문에 친정 식구들에게는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매주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기도 제목을 나눌 동역자나 공동체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자세한 상황이 교회 안에서 소문으로 퍼질까 염려돼서다. 한씨는 “교역자 역시 전문 상담가가 아니다 보니 도움받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그래서 외부 상담 기관만 찾게 되는데 남편은 상담을 거부하고 저 혼자만 받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고 울먹였다.
‘이혼’ 후 느껴진 따가운 시선
2009년 이혼한 윤정혜(가명·57)씨는 이혼 후 믿음 생활을 중단하다 몇 년 전부터 다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남편의 사업 실패 후 이혼한 그는 두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생계를 위해 주중·주말에 대중없이 일하다 어느 순간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7년 뒤인 2016년 지인의 소개로 용기를 내어 교회에 나갔다. 윤씨는 2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혼 사실이 알려진 뒤 갑자기 성도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속사정을 나눌 사람이 없어 답답했다”고 회고했다.
이직으로 다른 지역에 이사한 뒤 새로 옮긴 교회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윤씨는 “특히 교회 어른들이 ‘속사정 많았겠다’ 한마디 해주시면 넘어갈 일인데 ‘이혼하면 안 되지’라고 꼭 말씀하신다. 이혼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윤씨는 교회에서 이혼 문제가 마치 건드리지 않는 영역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역모임에서도 어쩌다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면 갑자기 말 자체를 안 하는 싸한 분위기가 된다”며 “어떻게 그런 과정을 겪었는지 물어보면 이야기할 텐데 함구하니 먼저 꺼내기도 어색했다”고 밝혔다.
올 초부터 외부에서 진행하는 가정사역 프로그램에 두 차례 참여한 그는 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다. 윤씨는 “저 같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담할 수 있는 공동체가 절실하다”며 “이혼 가정을 대상으로 사역의 방침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예배자로 봐달라
송미숙(가명·50)씨는 2016년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했다. 이듬해 친정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연달아 경험했다. 송씨는 “이혼에 어머니 죽음까지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구멍 난 정서를 채울 길이 없어 과도한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그는 이혼 후 어릴 때부터 다니던 모교회에 다시 출석하고 있다. 송씨는 “어릴 때부터 저를 알아오셨던 분들이 많으셔서 제 사정에 아주 안타까움을 느끼며 사랑으로 맞아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 안에 여전히 이혼 가정을 향한 선입견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송씨는 “주변에 이혼한 지인들이 있는데 교회에서 대부분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며 “이혼 가정에 대해 선입견으로 보지 않고 같은 예배자, 성도로 대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가정 아픔 겪은 성도들 실족할까 염려
교회 내 시선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하는 예도 있다. 서울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최미혜(가명·54) 권사는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을 여러 번 생각해봤지만, 교회에서 맡은 직분도 있고 가까운 지인들이 모두 이혼을 말리고 있다”며 심경을 전했다.
이혼 가정을 대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목회자의 고충도 있다. 방지원 순복음새소망교회 목사는 “교회가 ‘이혼은 죄’라는 메시지를 전하면 이혼의 아픔을 겪은 성도들이 실족할까 염려된다”며 “이런 일을 계기로 설교 메시지에 대해 귀를 닫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질까 봐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위기 가정’ 살리는 교회로 나서야
앞선 사례들은 한국 교계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한국사회처럼 회에서 점차 늘어나는 이혼 가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회복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이와 관련된 사역은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 이혼 연구 동향 분석을 통한 기독교교육학’을 연구한 이현철 고신대 교수는 “한국교회가 이혼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지만, 이혼에 대해 일치되고 명확하지 않은 신학적 입장으로 분명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회가 공동체 내에 있는 위기 가정, 이혼 가정을 섬기는 방법과 결혼에 대한 실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예전보다 이혼이 증가하는 세태 속에서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게 공동체의 힘”이라며 “위기 가정이 깨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돌보는 교회 사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아영 조승현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