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월요일과 새해 첫날엔 자살 위험이 가장 높다.’ 세계적 국제 학술지 ‘더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최근 발표된 내용입니다. 해당 논문의 저자인 부산대 의생명융합공학부 이환희 교수 연구팀은 “1971~2019년에 이르는 49년 동안 한국·일본 등 26개국 170만여건의 자료를 바탕으로 요일·공휴일별 자살 위험 패턴을 분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살 위험의 화살표가 월요일과 새해 첫날을 가리킨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연구진은 ‘깨진 약속 효과(Broken Promise Effect)’를 유력한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주말이나 연말처럼 한 주기가 끝날 때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다가 월요일이나 새해 첫날처럼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면 더 큰 절망감을 느끼며 자살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연구진은 이번 논문에 대해 “요일과 휴일에 따른 자살 위험이 공간적·문화적 요인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이를 바탕으로 근거 기반의 자살 예방 이론이 더욱 강화되고, 효과적인 자살 예방 전략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자살예방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활동이 익숙해지고 관계지향적인 활동이 줄어들었다는 점, 개인이 겪는 절망감을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부족해진 점 등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합니다.
이화영 순천향대천안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회 네트워크 지수, 신뢰 지수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의 일원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다보면 가족이 없거나 지지체계가 약해져 있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될 겁니다. 결국 새로운 출발선에서 불안감이 팽배해 있을 때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도와주는 손길이 있겠지’라는 안도감을 갖는 게 핵심이지요.”
논문의 핵심인 ‘위기 시점’을 들여다보면 ‘대응 시점’이 명확해집니다. 바로 월요일에 앞서 보내는 일요일, 새해 첫날에 앞서 마주하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연간 52차례 맞이하는 일요일은 828만여명(2024년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달하는 크리스천들이 주일 예배를 비롯해 가장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날입니다. 12월 31일은 ‘송구영신’을 위해 모인 성도들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격려하며 새로 맞이할 한 해를 응원하는 날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의 조언은 새김질해볼만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시대가 아니라 사는 게 두려운 시대입니다. 20대 청년들에게 아침이 두려운 건 자신에게 상처와 위축을 주는 일상을 앞으로 몇십 년 더 살아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죠. 신앙 공동체의 일원들이 교제를 나누며 소망을 심어주는 과정은 그런 두려움을 걷어내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버려지고 실패하고 외면 받는 삶을 벗어나 의미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하루를 맞게 되는 겁니다.”
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논문이 가리키는 날로부터 한 발 앞서 이 시기를 ‘깨진 약속’이 아니라 ‘지켜질 약속’의 날로, 절망감을 이길 희망을 불어넣는 날로 보낸다면 그 무엇보다 강력한 생명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