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섬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더라도 섬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갖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섬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며 구원하려는 목회자의 간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섬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섬에 살다 보니 바다의 변화무쌍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바다는 보이는 것과 달리 거칠고 무섭습니다. 배를 타고 깊은 곳으로 나가면 마치 사도행전(27:14)에 등장하는 ‘유라굴로 광풍’처럼 사도바울을 덮친 바다가 됩니다. 마가복음(4:38)에서도 큰 광풍이 일어나 바닷물이 배로 들어오자 제자들은 잠을 주무시던 예수님을 급히 깨웠지요. 이렇게 바다는 순식간에 광포해지고 거칠어집니다. 그런 자연환경 탓일까요. 섬사람들도 그 성격이 거친 편입니다. 평생을 이런 바다를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이겠지요. 얼마 전에도 옆 마을 젊은 어부 두 사람이 화창한 날씨를 예상하고 낚시를 나갔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2시간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우리 교회에 잘 나오시는 할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섬사람들은 예로부터 계곡물을 찾아 먹고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섬에는 정부에서 수도 시설을 설치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계곡에 흐르는 물을 웅덩이에 받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흐르는 물을 여러 사람이 사용하다 보니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계곡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용하던 사람의 아래쪽으로 급수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간혹 위쪽을 막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기존에 아래쪽에 설치한 사람과 큰 마찰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위쪽을 사용하면 물이 끊기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모였고 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평소 우리 교회에 나오는 여성 성도님의 남편이 갑자기 나오시더니 저에게 사정없이 욕설과 폭언을 퍼부으셨습니다. “도대체 목사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면서 일방적으로 욕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래전부터 사촌 형님이 막아서 사용하는 위쪽 계곡에 있는, 자기가 만든 우물을 부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서진 우물의 바윗돌이 커서 혼자서는 못 부쉈을 것이고 분명히 목사님이 도와서 같이 부쉈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분은 일절 들으려 하지 않고 이번 주부터 자기 아내를 교회에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인데 그분은 아직도 인사를 받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할 때 함께 교회를 섬기던 장로님 내외분이 미국 사는 친구 장로 내외와 한 달간 섬살이를 하려는 계획으로 섬을 방문했습니다. 그분들은 저의 섬 목회를 돕겠다고 생각하시고 한 달 정도 사용할 집도 마련하신 후 오셨습니다. 큰 여행 가방을 끌고 마치 이사 온 것처럼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날 근처 마을에 사는 독거 노인댁에 물통을 설치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장로님 두 분은 같이 가보고 싶다고 따라나섰고 부인 권사님들은 집 정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사시는 노인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노인과 마당을 공동 사용하시는 맞은편 집 어부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는데 막상 3톤짜리 큰 물통을 가지고 가서 설치하려고 하니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욕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분은 저와 두 장로님을 향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온갖 무지막지한 욕을 30분간 해댔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겨우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로님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욕을 처음 들어봤다”면서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장로님들에게 “내일 새벽기도가 5시에 있으니 일찍 주무시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에게 두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런 욕, 처음이지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자주 있는 일입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 시간이 됐습니다. 장로님들이 오셨는데 어제 들고 온 가방을 몽땅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떠나게 됐습니다. 오늘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섬입니다. 섬사람들은 우리가 섬기고 변화시켜야 할 어부들입니다. 말고의 귀를 사정없이 자르고 거지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고 욕하던 갈릴리 사람들과 이렇게 꼭 닮았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