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⑨ 먹는 일과 요리하는 일, 수단의 목적화: 맛집 탐방, 먹방, 쿡방 프로그램에 대한 심정적 불편함

입력 2024-10-28 09:30

근자에 초거대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의 영향력에 힘입어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여러 나라에서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21년 ‘오징어 게임’이 한국 프로그램 최초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순위 1위를 달성했다. 그 뒤를 이어 ‘지옥’, ‘피지컬: 100’이 글로벌 1위 기록을 달성한 바 있고, 얼마 전 방영돼 국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흑백요리사’ 또한 넷플릭스 비영어권 국가 인기순위 1위, 글로벌 인기순위 9위를 차지했다. ‘흑백요리사’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요리대회와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두 컨셉을 하나로 엮어 국내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음식, 요리 관련 프로그램의 성공 방정식이 집약된 독보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먹는 것과 요리하는 일에 대한 프로그램이 국내 방송가와 미디어 업계의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케이블 방송도, 온라인-모바일 미디어도 존재하지 않았던 공중파 방송 시절에는 음식이나 요리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요리법을 소개하는 ‘가정 요리(1981-1993)’나 향토 음식을 취재하고 소개하는 ‘6시 내 고향(1991-현재)’ 같은 짤막한 프로그램들을 제외하고서는 방송에서 음식,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보기가 어려웠다. 개도국 시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음식의 맛과 질을 일일이 따져가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아직 국민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식료품 산업이나 외식 산업 역시 규모와 체계 양 측면에서 아직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던 시절이다. 요리하고 음식을 먹는 행위가 그저 생존과 노동을 위해 ‘끼니를 때우는’ 일의 하나로 여겨지는 시기였던 만큼 방송가에서 음식이나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즈음 방송가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서는 음식이나 요리 분야에 관련된 프로그램 제작에 큰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찾아라 맛있는 TV(2001-2016)’, ‘생방송 투데이(2003-현재)’ 같은 프로그램이 맛집 탐방이라는 연출로 인기를 얻는 동안 온라인-미디어 업계에서는 개인방송 진행자들이 ‘먹방’이라는 새로운 방송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실력 있는 셰프들이 출연해서 요리를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 ‘쿡방’이 크게 유행했다. 그리고 2024년 현재는 공중파, 케이블, 온라인-모바일 미디어 등 모든 방송 미디어 영역에서 음식, 맛집,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먹는 일, 요리하는 일이 인기 있는 미디어 콘텐츠 소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2000년대 들어와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의 말석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식사와 요리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일이 아니라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제력이 향상된 만큼 이제 음식을 양이 아닌 맛과 질로 평가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그만큼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 소비에 투입되는 재화의 양도 커졌다. 과거 선진국 진입 시기의 유럽, 미국,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이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재현된 것이다.

둘째, 식료품 사업과 외식 사업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식료품, 외식 사업 영역에 웰빙 열풍이 불면서 음식의 가성비보다 맛 좋고 건강에 좋은 고품질의 식자재와 요리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에 따라 관련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 와중에 여러 외식 업체들이 홍보를 위해 미디어 업계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방송 미디어에서 음식, 요리 관련 프로그램의 편성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셋째, 음식, 요리 관련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지금은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백종원이나 최원석 같은 요식업 전문가를 섭외하려면 막대한 출연료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맛집 탐방이나 쿡방 프로그램이 처음 인기를 끌던 시기에는 다른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들었다. 그러면서도 일정 수준의 시청률 확보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니 방송국 임원들이 맛집, 요리 관련 프로그램 기획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흑백요리사’는 그동안 방영된 수많은 맛집 탐방, 먹방, 쿡방 프로그램의 흥행 요소를 집약해서 제작한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먹는 일, 요리하는 일을 한 사람의 삶의 가치를 대변하는 일로 그려낸다. ‘흑백요리사’의 커다란 인기는 현재 우리 한국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인식의 변화, 가치체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 생존을 유지하고 삶의 다른 활동을 보조하는 일로 여겨졌던 요리가 이제는 삶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살기 위해 먹고 요리했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먹고 요리하기 위해 산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먹고 요리하는 데 목적을 둔 삶이 막대한 효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탁월한’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우리 사회는 기술발전과 체계발전의 고도화 단계에 이르러서 점점 더 말초적 만족을 주는 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영혼과 정신의 고결함, 인간관계의 부유함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고 갈수록 기초적 욕구에 충실해져만 가는 우리의 세태가 안쓰럽게 여겨질 따름이다. ‘흑백요리사’를 비롯한 여러 맛집, 먹방, 요리 관련 미디어 콘텐츠의 인기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사회적 퇴락의 징조 가운데 하나다. 성서에도 먹는 일, 요리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 많다.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요리에 관한 내용과 일화들이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들 가운데 요리의 맛 자체를 누리는 일에 초점이 맞춰진 기록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에서의 요리는 생존 외에 속죄제를 위한 일, 그리고 객인(客人)과 나그네, 궁핍한 자를 대접하는 일을 위한 도구적 요소다. 신약에서의 요리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 성도 간 교제와 성도들의 구제를 위한 일,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많은 이들과 교제하는 일을 위한 도구적 요소다. 신구약 성서 어디에도 식사와 요리를 맛의 향유를 위해 행하는 일로 소개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먹는 일과 요리하는 일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기본 정서라고 볼 수 있다.

맛의 향유와 배부름이 주는 만족감은 음식과 요리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포함돼 있지 않다. 건강에 좋지 않고 적절하게 요리되지 않은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은 의의 도구로 사용해야 할 우리 몸을 해치는 것이기에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고도로 발달한 미각을 만족시키는 음식과 요리법에 많은 관심과 가치를 두는 일, 이것 또한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지양해야 할 일이다. 신앙의 선진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을 영혼을 돌보는 데 필수적인 방편이라 믿었다. 금식 기도라는 이 중요한 영적 활동은 오늘날 맛집, 먹방, 요리에 관한 관심이 마음을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갈수록 잊혀지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가 먹방과 쿡방에 눈과 마음을 뺏기는 만큼 교회가 그들에게 먹는 일에 대한 성서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현재 우리 주위세계(die Umwelt)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미디어 공간은 갈수록 기독교인들에게 가혹한 조건들을 부여한다. 먹방과 쿡방에 대한 신앙인들의 심정적 불편함은 이로부터 기인한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