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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 사진을 보게 됐어요. 전남 여수의 한 섬에서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로 유독 그 강아지가 눈에 밟히고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죽으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들었죠. 그때 결심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으로 데려와야겠다고요.”
-밥풀이 견주 임진솔(30)씨
유기동물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은 대부분 모견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구조됩니다.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얼마나 성장할지 견종이나 크기를 예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이런 예측 불가능성은 유기견 입양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여수 유기견 보호소의 작은 강아지를 보고 마음을 졸인 진솔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서울에서 여수까지 망설이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하지?’ 강아지 사진을 본 뒤 이 걱정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달음에 보호소를 찾아간 진솔씨는 지난 2023년 6월 2일, 태어난지 4개월 된 퍼피 ‘밥풀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개st하우스팀은 따뜻한 가족의 일원이 된 밥풀이를 만나기 위해 가을 햇볕이 따스했던 지난 7일, 서울 월드컵공원을 찾았습니다.
유기견에서 가족으로, 밥풀이와의 운명적 만남
진솔씨는 밥풀이의 첫인상을 묻자 “작고 꼬질했다”며 웃었습니다. 제대로 씻지 못한 3.8㎏ 퍼피에게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 신기하게도 진솔씨는 그게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보호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맑게 웃고 정신없이 내 손가락을 핥았다”며 “집이란 데를 처음 들어와봤을 텐데, 집에 도착해서도 온 집안을 우다다다 막 쏘다녔다. 좀 뻔뻔한 아기 강아지였다”고 또 웃었습니다.
사실 진솔씨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초짜 견주였습니다. 대신 20·15·14살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고 있었어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나이 지긋한 냥이들과 퍼피의 합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그렇게 반려동물 4마리와 진솔씨는 함께 살게 됐습니다.
“얼마나 클까?” 중대형 유기견에 대한 우려와 현실
그리고 1년 4개월 뒤. 구조 당시 4개월령 퍼피였던 밥풀이는 긴 다리에 커다란 코, 작은 눈이 매력적인 성견으로 성장했습니다. 몸무게는 무려 13.5㎏나 됩니다. 대형견 기준인 15㎏에는 못 미치니 ‘대형견에 가까운’ 중형견이라고 할 수 있죠.
견종은 순도 100% 토종 시고르자브종(잡종견을 이르는 신조어)이었습니다. 궁금증을 못 이긴 진솔씨가 유전자 테스트를 한 결과입니다. 그중 진솔씨가 가장 신기해하는 건 수상하리만치 긴 밥풀이의 다리였어요. 그래서 붙은 애칭이 ‘연남동 장원영’. 납작하고 순한 얼굴이 세수를 하다만 듯 누리끼리한 털빛, 느닷없는 롱다리와 어우러져 뜻밖의 매력을 뿜어냅니다.
물론 보호소에서 데려올 때만 해도 밥풀이가 이렇게나 크게 자랄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나 크든 무조건 책임지겠다는 마음이긴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밥풀이 크기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대형견에게는 더 넓은 공간과 시간, 돈이 필요할 테니까요.
실제로 반려견의 크기는 입양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입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사항으로 ‘동물이 다 성장했을 때의 크기’가 18.7%를 차지합니다. 동물의 크기 때문에 다루기가 어렵거나, 예상보다 크기가 커지고 외모가 달라져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13.4%나 됩니다. 퍼피 때 품종을 모른 채 키우다가 성견이 돼서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이만큼이나 된다는 뜻이죠. 반려동물 동반 시설에서조차 출입이 제한되는 등 대형견 견주가 일상 속에서 겪는 크고 작은 불편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큰 개의 매력은 키워봐야 알 수 있습니다. 대형견을 키우는 견주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입니다. 진솔씨 역시 “강아지는 크면 클수록 매력이 있는 것 같다”며 “안아줄 때 묵직하고 쓰다듬을 때도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대신 큰 덩치에 겁을 먹는 이웃들을 위해 이것저것 조심할 게 많다고 합니다. 특히 산책할 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그는 “사소하게는 크기가 커서 사람들이 밥풀이를 무서워할까 봐 귀여운 장신구를 많이 달아준다”며 “인형 같은 거라도 하나 달고 있으면 먼저 인사해주고 예쁘게 봐 주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기동물 입양 후, 완벽한 가족이 된 밥풀이
밥풀이는 진솔씨 가족을 바꿔놓았습니다. 밖에서 시간 보내기를 즐기던 진솔씨는 밥풀이가 온 뒤 집순이가 될 정도로 일상이 달라졌습니다. 동물에 무관심하던 진솔씨 아버지 역시 딸보다 밥풀이 안부를 먼저 묻고는 합니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밥풀이를 위한 생일파티를 준비해서 가족 모두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밥풀이는 진솔씨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밥풀이도 편견과 부딪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진솔씨는 “밥풀이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짖음이나 분리불안의 문제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유기견은 버려진 트라우마가 있지 않냐’고들 쉽게 말한다”며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서 진솔씨는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보통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그렇게들 말하는데 거기에 ‘버리지 마세요’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강아지를 입양하면 너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수진 기자, 최민석 기자, 이하란 기자 orc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