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이 영화가 아닌 콘텐츠에 스크린을 내어준 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관객은 이제 콘텐츠를 다른 플랫폼과 얼마나 차별화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지를 따진다.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과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영화관은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돌파구는 K팝 아티스트의 공연 실황 영화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실황 영화만 임영웅, 하이라이트, 아이브 콘서트까지 3편이다. 이 가운데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지난 22일 누적 관객수 35만명을 돌파하며 공연 실황 영화 1위에 올랐다.
강력한 팬덤을 대상으로 하는 얼터콘텐츠(대체 콘텐츠)는 재관람 및 특수상영관(아이맥스, 스크린X, 울트라 4DX 등) 관람 비중이 높아 영화관의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CJ CGV는 2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크린X(정면과 좌우 벽면까지 3면에 화면이 확장되는 상영관)의 국내외 현황 및 확장 계획을 설명했다.
조진호 CJ CGV 국내사업본부장은 “스크린X는 (해당 콘텐츠 전체 관람객의) 최소 30%에서 최대 70%가 이 포맷을 선택하는 형태를 보였다”며 “올해 얼터콘텐츠의 매출액은 300억원 정도로, 전체 상영 매출의 5%를 차지한다. 이 비중은 향후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9년 제로(0)였던 매출액이 5년 사이 300억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엄청난 성과”라고 덧붙였다.
공연 실황 영화와 뮤지컬에 치중돼있던 얼터콘텐츠는 스크린X 상영관의 확대와 함께 스포츠로도 범위를 넓힌다. CGV는 세계 최초로 프로야구 경기를 스크린X로 생중계한다. 오는 26일 오후 2시 진행되는 ‘2024 신한 SOL뱅크 KBO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를 10개 스크린X 상영관에서 처음 공개한다.
이날 맛보기로 공개된 스크린X 야구 경기는 포수 뒤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듯한 앵글로 정면엔 그라운드가, 양 측면엔 관중석이 잡혀 경기장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조 본부장은 “3면으로 넓게 펼쳐진 스크린으로 경기장의 넓은 공간감을 그대로 담아냈다”며 “어제 3곳에서 예매창을 열었는데 3분 만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심준범 CJ 4D플렉스 대표는 “현재 46개국 417개인 스크린X 상영관을 2026년 673개까지 확장할 예정”이라며 “미식축구가 활성화된 미국과 유럽의 축구, 일본의 야구 등 글로벌에서도 스크린X를 통해 스포츠 경기를 생중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스크린X에 호감도가 높은 일본 시장을 빠르게 확장하기 위해 연내에 CJ 4D플렉스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 2026년부턴 J팝 실황 영화 및 스크린X 포맷의 로컬 영화도 각 10편 이상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영화관들은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의 확대를 겪으며 전에 없던 새로운 생존 방식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상영 콘텐츠의 장르 확장뿐 아니라 틀에 박힌 영화의 형태와 상영 방식에서 탈피하는 식이다.
지난 6월 CGV에서 단독 개봉한 영화 ‘밤낚시’는 러닝타임 12분 59초짜리 ‘스낵무비’를 처음 시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상영 시간이 짧은 만큼 티켓 가격도 1000원이었다. 1000원짜리 영화는 다른 영화의 상영으로 이어지는 등 나비효과도 있었다. 이에 CGV는 다시 한번 비슷한 시도를 한다. 오는 25일부터 단독 상영하는 8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은 1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롯데시네마도 스낵 공포영화 ‘4분 44초’를 4000원에 선보인다.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편당 4분 44초, 전체 러닝타임 44분으로 구성된 재치 있는 숏폼 콘텐츠다. 합리적인 티켓 가격과 러닝타임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에게 새롭고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한다는 계획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